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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변산기 (2/5)


여행지 : 내소사, 내변산, 와룡소, 가마소
여행일 : 2000/09/05


매스꺼운 속으로 맞이한 내변산에서의 아침.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여분의 밥으로 도시락(국립공원 내 취사금지!)도 싸고...
어젯밤 우릴 환장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던 별들 때문인지 날씨는 무진장 좋더군요. 글치만 배낭은 좀 무겁더구만요.


적당한 입장료(?, 내소사 1000원, 국립공원 1300원)를 치르고 내소사 일주문을 통해 첫 산행길을 올랐읍죠.
'능가산 내소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 내소사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이 나옵니다. 마치 산림욕장에나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데요. 아침에 마시는 시원한 공기와 새소리...
어쩌면 내소사는 극락으로 가는 '표지판'이요, 이 숲길이 바로 '극락'이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연꽃내소사 경내, 꽤 이름이 알려진 것 절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조용하더군요. 물론 평일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럴 테지만... 암튼 고요함과 예스러움이 묻어있는 곳 같더군요.
특히나 세월 속에서 칠이 벗겨지고 다듬어진(?) 대웅전의 꽃무늬 창살과 그 옆, 대웅전의 목탁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듯한 무설당, 그리고 절 한편에 자리잡은 '팔괘'(실은 장기알 모양의 작은 인공 연못) 속 연꽃이 인상 깊었죠.
꽃창살과 연꽃이 가슴에 느껴지는 내소사...


11시 40분. 내소사 조금 아래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변산의 '즐거움'을 오르기 시작했읍죠.
첨엔 다행스럽기만한 화창한 날씨도 흐르는 땀에 점점 원망스러워 지고, 올라야 할 길만 한없이 보이더니 그러길 수십분... 점점 하늘빛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발아래 내소사 경내가 점점 작게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리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걸으면 걸을수록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지만 맘만은 훨씬 더 가벼워지더군요.
초반 산길은 좀 경사가 있지만 재맥이 고개와 관음봉, 세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부터는 비교적 수월히 산을 오를 수 있읍죠.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곳도 많고, 오른쪽 능선 아래 자리잡은 청련암은 산능선과 어울어져 운치를 더하고, 눈 아래 펼쳐진 곰소만의 갯벌도 발걸음을 훨 가볍게 하죠.


(위)관음봉,(아래)의상봉과 비룡상천봉길... 바람... 풍경...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관음봉(424.5m)이죠.
시원한 바람이 관음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마침 날씨가 좋아 사방의 경치가 한 눈에 다 들어오고, 내변산의 첩첩이 둘러친 산과 멀리 보이는 바다, 섬,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내변산 최고봉 의상봉(508.6m)과 멋진 암벽으로 둘러쳐진 비룡산천봉(440.4m)이 보이더군요.
천금같은 배낭에 어깨는 후아질(!) 지경이고 등은 땀으로 티셔츠로 다 달라붙어 버렸지만, 그 상쾌함만은 오르지 않고는, 땀을 흘리지 않고는 모를 일! 거친 숨으로 1818 연달아 투덜거리지만 이런 맛에 또 산을 찾게 되는가 봅니다.


숨을 돌린 뒤 깎아지는 절벽을 우측으로 능선길을 타고 30~40분 정도 더 나가 세봉에 이르렸죠. 높이야 관음봉보다 좀 낮지만 바위 절벽과 회양골, 봉래구곡이 한눈에 들어와 또다른 느낌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읍죠.


산은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되는 법. 저희들이라고 별수는 없죠. 하산길은 올라온 길(내소사-관음봉-세봉)과는 반대편으로 잡았거든요. 갈대밭 삼거리를 통해 회양골을 따라 와룡소를 둘러보고 가마소로 해서 청림야영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읍죠.
산을 오를 때와는 다른 엄청난 무게와 통증으로 느껴지는 배낭과 후들거리는 다리. 생각 보단 하산길이 길어지더군요.
내려가도 내려가도 높이는 그대로인 것 같고... 회양골의 깊이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명히 하산길이건만 오히려 점점더 첩첩산중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불안감...


갈대밭 삼거리에 내려섰을 땐 점점 날이 저물어져 갈려는 분위기... 그래서 일정을 약간 변경해 바로 청림야영지로 방향을 잡았죠.
근데 산행 표지판이 제가 들고 간 지도와는 달리 이상하게 표시돼 있었거든요. 지도에선 분명히 가마소 하산길이 있었지만 눈앞의 가마소 행 표지판엔 "담수시 등산로 패쇄"라 적혀있더군요. 폐쇄면 폐쇄지 왠 "담수시"???
회양골 아래 부안호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책(월간 산 2000년 7월호)과 지도에서 변산반도 산행기를 읽고 읽었지만 이런 상황은 금시초문(변산기 이후 책을 다시 읽어보니 가마소 길이 패쇄되었다고 조그맣게 적혀 있더군요)...
회양골 상류로 해서 우동리 방면으로 빠지는 등산로가 있지만 길이 멀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니 우리가 내려왔던 엄청난 내리막(?)이 눈에 선하고, 새로 뚫어놓은 것 같은 내변산 분소라고 표시된 등산로(봉래구곡 방향)는 아무래도 이상하고...


아침에 매표소에서도 아무 말 없었고, 좋았던 날씨라 부안호의 '담수'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아 지도에 표시된 가마소 길을 예정대로 밀어붙이기로 했죠. 하지만 길은 갈수록 더 희미해져가고... 설상가상으로 날은 더 어두워지고...바로 옆이 계곡이라 섣부르게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한다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었죠.
황당, 난감...


부안호로 인해 끊어진 길별별 생각이 다 나고, 가도가도 지도에 표시된 청림야영장으로 이어진 도로는 보일 생각도 않는 산길... 길은 보였다, 사라졌다... ...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집(교회) 한 채, 그리고 큰 길이 보이더라구요. 앗! 살았다~
근데 있어야할 사람은 없고 무식하게 큰 똥개들만 으르렁거리는데, 야산에서 만난 똥개... ... 똥개가 아니라 완전히 늑대!!!
결국에는 다시 희미한 산길을 돌아 우회해서 큰길가 까지 나왔었죠. 이 길만 따라가면 도로를 타고 목적지로 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역시나!
설마설마했었는데 이번엔 부안호의 물이 길을 가로막아 버렸지 뭡니까... TV에서나 봤던 수몰지구. 변산반도 중앙에 댐이 들어서고, 들판이랑 마을이 모~조리 물 속으로 사라버린 수몰지구... 지도에 표시된 등산로와 마을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 펼쳐진 건 물, 물, 부안호의 물뿐...
황당한 맘에 웃음밖엔 안나오는데 저 멀리서 다행히 아저씨 한 분이 보이더군요. 좀 전에 봤던 집(알고 보니 기도원)에 들르는 사람들을 나르기 위해 조각배를 물길 중간에서 운행(?)하고 있더군요. 그 아저씨 도움으로 깊은 물을 건널 수 있었죠. 하지만 무릎에서 허리 정도까지의 얕은 물길은 별다른 도리가 없더군요.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에 여행 짐을 한아름 안고서야 어렵사리 도로변까지 나올 수 있었죠.


약 1시간 정도를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 청림야영장(지도에선 보였으나 찾을 수 없었음) 부근 가게 마당에서 텐트를 칠 수 있었죠. 서둘러 밥을 챙겨 먹고, 피곤한 몸이지만, 그래도 오늘의 피로는 오늘에 풀어야겠기에 시원한 맥주로 목을 적시고...
... zZzZzZ


산은 좋았지만, 폐쇄된 등산로와 수몰된 길로 인해 황당했던 하루...
엉터리 지도와 준비 미숙으로 평생 잊지 못할 쑈킹한 산행을 한 날...

분류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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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등록일 :
20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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