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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수락산


여행지 : 당고개, 학림사, 용굴암, 수락산
여행일 : 1999/11/13


토요일 아침, 알람을 7시에 맞춰 놨지만 잠결에 꺼버리는 바람에 9시가 다 되서야 일어났죠. 서울의 산인데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릴 걸 예상해 일찍 출발하려 했는데... 이런~
아무튼 일어나자마자 황급히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지하철로 당고개 역(서울, 4호선)에 도착했을 때가 11시, 이번 산행의 출발점이죠.
서울 외곽이라고는 하지만 도심인지라 산과 연결된, 그러니까 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가 건물에 가려 도무지 분간이 안되더라구요. 할 수 없이 지도책에서 대충의 방향(그러니까 당고개 역 좌측 출구-북서쪽-으로)만 잡고 무조건 갔었죠. 그러다 근처 가게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면서 주인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대충은 맞게 왔더군요.


20여분 정도를 헤메다 겨우 학림사로 가는 포장길을 만날 수 있었죠.
길가에는 TV에서만 보던 단풍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좋데요. 몇 개라도 주워 올려다 그냥 놔뒀죠. 애지중지 책갈피에 끼워서 가지고 온들 보여줄 여자도 없고, 괜히 여기저기 뒹굴다 쓰레기만 하나 더 늘 거 같아서리...
이런 잡생각으로 길을 가는데 학사전이라는 건물 앞 돌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여도
한번 옹졸해 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
허허... 뜨끔뜨끔... 쪽팔리는 이내마음...


산신당 앞 부처길 아래 마을(?)에서 20분 정도면 학림사에 도착합니다.
똑똑똑... 목탁소리와 함께 다소곳이 기도를 올리는 어느 어머님의 '침묵'의 소리...
뭐 특별할 건 없었는데 학림사 뒤뜰의 석조 입상 앞에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쉬고 있었거든요. 햇빛의 따스함과 잔디의 푹신함이 너무 편하게 보이더라구요.
역시나 옛말이 틀린 것이 없다니깐... 개팔자가 상팔자!!!
삼신당에서 오늘의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다시 길을 올랐죠. 여기서부턴 비포장의 산길이라 조금씩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갈림길... 첨의 계획엔 용굴암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려 했는데 용굴암을 가자면 도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꼴이라 그냥 능선길로 이어지는 길을 타고 갔읍죠.
조금씩 조금씩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곧 능선길에 오를 수 있었죠. 그 순간 눈앞에 떡-버티고 선 백발노인의 모습을 한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탁! 트이는 시야의 상쾌함...
근데... 발 아래의 서울이 부옇게 변색돼 보이더군요. 스모그 때문인지 진회색의 안개띠가 도심의 아파트, 빌딩을 넘어 도봉산의 어깨까지 쌓여있더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찬란한 21C의 문화를 자부하는 희망의 도시가 검은 안개에 뒤덮여 있더라구요... ...


수락산 능선한시쯤 의정부시, 남양주시, 서울을 나누는 경계의 모서리를 이루는 철모바위를 능선길에서 만날 수 있었죠.
제가 보기엔 별로 철모 같진 않던데... 아예 철모보다는 '빠라바라 빠라밤~'의 헬멧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한데. 철모바위 아래에 약간의 쉼터(평지)가 보이던데 시간이 점심때인지라 등산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리를 펴고 밥을 먹고 있더군요.
제발 지 밥그릇만이라도 챙기 갔으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만 남긴다!
흔적 없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


수락산 주봉두시쯤, 그러니까 산을 오른 지 두 시간 정도 걸려 수락산(637m) 정상에 도착했어요. 정상의 둥그런 바위 사이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수락산'이라 적힌 이정표가 보이더군요. 배가 무지 고파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에나 좀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었거든요. 북으로는 의정부시, 서쪽으로는 북한산, 도봉산, 남으로는 불암산...
반역의 산... 수락 8경이라 불리는 경관들이 대부분 서울을 등지고 북쪽에 있다해서 '반역의 산'이라고도 불리는 수락산. 돌로 이뤄진 바위산에 드문드문 핀 소나무, 희끗희끗 깎아지며 떨어지는 바위, 절벽... 이제는 기력이 쇠약해져 인근 산으로 주도권을 넘겨준 백전노장의 해묵은 상처처럼 늠름해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정상에서 30분 정도 둘러보다 올라온 길의 반대편 길로 산을 내려왔었죠. 조금 가다보면 도봉구(망월사 역, 도봉산 역) 방면의 길과 수락산 유원지 방면의 길로 나눠지는데 전 유원지 방면으로 길을 잡았어요.


약수가 있고, 간단한 음식(파전, 막걸리)를 파는 수락산장을 지나 내원암에 닿았어요. 시원한 바람에 여러 건물들의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동시에 춤을 추는데... 짤랑짤랑, 땡그랑 땡그랑... 시냇물 흐르는 소리, 자연과 인공의 조화된 소리...
돌계단절 바로 아래는 수락8경중에 하나라는 금류폭포-비록 우기가 아니라서 수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갈색 낙엽과 어우러진 은백색 폭포가 등산객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더군요. 그리고 조금 폭포를 지나 왔을 때 멋진 돌계단이 몇 군데 보이더라구요. 경사진 자연 암반에 하나하나 'ㄴ'자로 깎아 만든 계단이었는데, 우아... 수락산에서 느끼는 또다른 정취. 자연과 인간과의 모나지 않은 조화가 아름답더군요. 마치 어릴 적 돌다리를 건널 때의 소중함으로 신기하게 한발한발 내딛었죠.


바위산이라 약간 험상궂은 길도 있긴하지만 내려오는 길이라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진 안더군요. 한시간 반 정도면 정상에서부터 내려올 수 있읍죠.
그런데 산아래 '수락산 유원지'를 통과할 무렵의 그 어지러움이란... 인간의 냄새와 자동차, 쓰레기의 냄새들이 간간이 나더군요. 거기에 뽕짝가락에 맞춘 술취한 아저씨의 고함소리...
설상가상으로 물개 쇼장처럼 시멘트로 강길을 막아 이상하게 변형 돼 버린 옥류폭포까지...
아쉽더라구요... 진짜 '자연의 유흥'이 여기 있는데 그걸 못보고 오히려 쓸데없는 잡동사니만 쌓아놓은 모습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 직장 동료들 간에 간단한 차림으로 산보하는 모습들이 더 감동적으로 보이더라구요.


유원지 속을 한참 지나서야 버스가 다니는 길(남양주 시)에 접할 수 있었죠. 45-1번(수락산 유원지-덕공리-태능-청량리) 버스를 타고 청량리를 거쳐 집으로 왔읍죠.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자다가 졸다가 하면서 말이죠...

분류 :
자연
조회 수 :
1990
등록일 :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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