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잡문에는...      > 오늘 하루
     
 
 
- 잡문에는...
- 오늘 하루

잡문에는...

무용의 적, 대중과의 소통부재


 몇 해 전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무용제(제4회 부산국제무용제)에 갔던 적이 있었다. 뭐 무용에 특별히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용 관련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친구가 올 거라는 말에 술이나 한 잔 걸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 자리였다.
 거기서 그를 만났다. 각진 얼굴과 다부진 체격은 기계체조 선수처럼 균형 잡혀 보였고 꽉 다문 입술에선 예술인 특유의 고집이 묻어나 있었다.
 무용제가 끝나고 근처 횟집에서 술이 한두 잔 오고 갈 쯤 화재도 자연히 무용으로 이어졌다. 그가 오늘 무용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기에,
  “좋았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무용에 대한 일반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무용이라고 하면 일단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것이 일반인이 갖는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한국무용은 지나치게 정적이고, 현대무용은 너무 낯설다는 것, 발레는 호기심은 가지만 클래식에 대한 경험이 없다보니 고액의 입장권을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지죠. 그렇다고 초대권을 손안에 쥐어준다고 해서 없는 관심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인의 공연 소식에 마지못해 간다고는 했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죠. 한마디로 관심이 없으니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외면되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무용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무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예술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으로 그 주변을 얼쩡거린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벤트나 무료 공연, 지인의 행사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석해 견문을 넓히려했고, 의식적이든 아니든 일 년에 몇 차례씩은 무용이나 춤, 발레 같은 공연(물론 유로좌석이다)을 꾸준히 봐 왔던 터라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는 일말의 자격은 충분하리라.
  “일반인들이 나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면 묵혀버린 초대장이 방구석에 나뒹굴지는 않았으리라! 가족과 선후배, 뿌려진 초대권들로 앞좌석을 채운 체 춤을 추지는 않았으리라!”

 예술에 대한 내 자만은 술자리의 취기에 힘을 얻어 무용계 전체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우리 무용계의 현실과 무용인의 경제적 어려움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이에 질세라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의구심이나 바람을 줄기차게 쏟아놓기 시작했다.
  “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바꿔야 합니다. 좀 더 재밌게 다가갈 수 있어야해요. 형식과 격식만 따진다면 객석은 더 텅텅 비게 될 겁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계속 공연되는 것을 보세요. ‘그것도 무용이야’ 라고 반문하기 이전에 객석을 채운 관객을 살펴봐야 합니다. 발레라는 클래식을 힙합에 적용시킨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야 됩니다.”
 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지만 현직 무용인에게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인지 높아진 톤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늘 공연 봤지요? 수십 편의 작품 중에 한 두 작품 빼고는 사람들이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무용을 조금 관심 있게 본다는 저 역시도 지겨웠는데 꼬마랑 번데기 먹으면서 보던 아저씨는 오죽했겠습니까! 조금은 쉬운 작품을 선택했어야 했고 공연 전 후에 이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도 부족했어요.
 일반인들은 무지합니다. 특히나 무용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에 오늘만큼은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다는 심정,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무용에 대한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야 됩니다.”


 그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와 초면이라는 것만 아니었다면 한 대 쳤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했는지는 술자리가 끝날 때가지도 풀어지지 못했다. 대화중에 나왔을 무용에 대한 나의 오해였거나 내가 갖고 있는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용계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춤꾼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나도 알고 있다. 나만의 오해와 편견에 갇혀 무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무대에 올라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여러 말들을 쉽게 떠벌였는지 모르겠다. 무대에서 흘린 땀방울이나 그 밑에 깔려있을 눈물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쉽게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무용이라는 문화가 좀 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느꼈던 살풀이의 여운과 따각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토슈즈 소리를 많은 사람들에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 2009/12/12
  춤판닷컴( http://chumpan.com )에 기고할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적다보니... ^^

조회 수 :
1880
등록일 :
2011.05.18
21:51:18 (*.182.220.169)
엮인글 :
https://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2366&act=trackback&key=6db
게시글 주소 :
https://freeismnet.cafe24.com/xe/236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sort 최근 수정일
37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freeism 1777   2011-05-18 2011-05-18 00:03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내일 '울릉도, 일주일간의 가족 트레킹'이라는 제목의 다큐가 방송된다. 일 년 전부터 준비한 울릉도 여행계획서와 그동안의 여행기를 첨부한 기획서가 방송국에 채택되어 얼마 전 촬영을 마쳤기 때문이...  
36 선생을 하면서 늘은 것 freeism 1774   2011-05-18 2011-05-18 00:05
선생을 하면서 늘은 것 먼저, 욕이 늘고... 말과 잔소리가 늘고, 비교하는 시간이 늘고, 부서진 몽둥이가 늘고, 자퇴한 학생이 늘고, 정리할 자료가 늘고, 출제한 문제가 늘고, 컴퓨터 보는 시간이 늘고, 출장 가는 시간이 늘...  
35 검은 유혹 freeism 1867   2011-05-18 2011-05-18 00:06
검은 유혹 까만 춘장과 어우러진 탱탱한 면발에, 돼지고기의 달콤함과 양파의 아삭함이 뒤섞인, 자장면 모든 신경을 집중해 젓가락을 가른다. 반달모양의 노랑무 한 조각으로 입안을 헹군다. 살짝 올린 오이와 곁들인 고춧가루에 ...  
34 중간고사 치기 100m 전 (Original Version) freeism 1741   2011-05-18 2011-05-18 15:42
중간고사 치기 100m 전 (Original Version) 마음은 천재지만 노력은 둔재, 껍데기는 명품이지만 알맹이는 폐품. 몇 분 후에는 시험을 봐야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 적어라, 적어야 기억에 남는다. ...  
33 똥 없는 세상이 열리다 freeism 1868   2011-05-18 2011-05-18 15:46
똥 없는 세상이 열리다 몇 년 전에 블루베리색의 영국산 파카 조터(Perker jotter) 볼펜을 선물로 받아 사용한 적이 있었다. 클래식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부드러운 필기감이 인상적이었는...  
32 개학, 선생M의 아침 freeism 1860   2011-05-18 2011-05-18 21:40
개학, 선생M의 아침 07:54, (한 층을 올라 반도 채워지지 않은 컴컴한 교실에 들어선다.) 07:54, 야, 불 켜!, 여기 휴지도 좀 주워. 근데 아직 안 온 놈들은 뭐야! 08:03, 이리 와, 어이 거기! 늦게 온 놈 엎드려. 08:04, ...  
31 내 책 읽기의 시작 freeism 1963   2011-05-18 2011-05-18 21:42
내 책 읽기의 시작 군대시절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OO이가 읽은 책”이라는 목록을 만들고 한권 읽을 때마다 거기에 순번, 책 제목, 저자, 읽은 날 등을 적어 넣었습니다. 1, 2, 3, 4... 제대할 땐 순번이 백 번 ...  
30 책, 살 것인가? 빌릴 것인가? freeism 1892   2011-05-18 2011-05-18 21:43
책, 살 것인가? 빌릴 것인가? 방을 옮기려 한다. 그러려면 책장부터 옮겨야 한다. 책장에 꽂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책을 쌓아놓고 보면 엄청난 양이다. 한 권 두 권 모은 책이 벌써 한 수레를 넘어서는 것을 보면 스...  
29 파워블로거 따라잡기, 무엇이 문제인가? freeism 1828   2011-05-18 2011-05-18 21:46
파워블로거 따라잡기, 무엇이 문제인가? 알라딘 블로거로 활동 중인 파란여우님이 그간의 서평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다. 그 전에 몇 번 이름은 들어봤지만 관심을 갖고 그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았는데 알라딘 메인에 걸린 그...  
28 C8, 미치도록 포근한 교실이여! freeism 1785   2011-05-18 2011-05-18 21:48
C8, 미치도록 포근한 교실이여! 월요일 2교시. 시험시간 중간에 끼어있는 자습시간. 교실을 둘러보자 답답해진 가슴에선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히터로 한껏 훈훈해진 실내공기는 턱 턱 막힌 가슴을 더욱 짓눌렀다. 3교시에는 국어 ...  
» 무용의 적, 대중과의 소통부재 freeism 1880   2011-05-18 2011-05-18 21:51
무용의 적, 대중과의 소통부재 몇 해 전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무용제(제4회 부산국제무용제)에 갔던 적이 있었다. 뭐 무용에 특별히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용 관련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친구가 올 거라는 말에 술이나...  
26 말을 말하다 freeism 2233   2011-05-18 2011-05-18 21:52
말을 말하다 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지요. 가까이할수록, 잡으려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엄청난 학식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해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  
25 1년에 50권 읽기 (2010) freeism 5187   2011-05-18 2012-08-25 08:50
1년에 50권 읽기 (2010) 한비야님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보면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 본부'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일 년에 백 권이라면 일 주일에 두 권 이상을 꾸준히 읽어야 된다는 결론인데 외계인 생명체나 가능할 ...  
24 일기, 아날로그의 향기 freeism 2299   2011-05-18 2011-05-18 23:45
일기, 아날로그의 향기 내가 자필로 일기를 써본지가 언제였던가. 대학교 초년시절이었으니 거의 십 오년은 더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홈피 (freeism.net)가 열리고 독서후기와 여행기를 올리면서 일기란 놈은 차츰 멀어져갔다. ...  
23 졸업식 풍경 freeism 2164   2011-05-18 2011-05-18 23:46
졸업식 풍경 졸업식 준비로 바쁘다. 강당에 의자와 화환을 배치하고 마이크를 테스트한다. 졸업생을 소집하고, 대열을 정리해서 예행연습을 한다. 선생님들은 상장과 상품을 정리해 나르느라 바쁘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들려줄...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