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3/07/01)
읽은날 : 2003/11/19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올 초부터 지루하게 읽어오던 박경리님의 토지(土地), 그 무게에 눌려 다른 책을 볼 엄두를 못 내다 잠깐 짬을 내어 인근 '주막'에 들른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서둘러 구입해 놓고 책장에 모셔둔, 먼지하나 앉을까 살포시 포개어 놓은 노란 보물 상자를 꺼내든다.
얄팍한 상술인진 모르지만 책을 뒤덮은 노란색 표지가 벌써부터 설레게 한다. 이번에는 어떤 작당을 꾸밀까! 무슨 기똥찬 입담을 풀어놓을까 하는 생각에 잔뜩 기대감에 젖는다. 그래서인지 책 자체의 가치를 떠나 ‘이외수’라는 캐릭터가 갖는 돌발적인 신선함이 날 즐겁게 한다.


첫날 밤, 신부의 ‘노란’ 옷고름을 푸는 새신랑의 긴장된 손짓으로 표지를 펼친다. 그리곤 엷은 바람에라도 꺼질까 작은 불씨를 가슴에 안고 가는 새댁의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책장을 넘긴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외수스럽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유려한 문체와 의미 깊은 단어, 그리고 간결한 듯 보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림들, 그리고 향신료처럼 첨가된 약간의 위트 섞인 ‘막말’들이 이외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흘러간다.
정말이지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외수 형님만의 그 감수성에 혀를 내두른다. 일상에서 스치는 잡다한 현상들을 서투르게 흘려보내지 않고 정성스레 다듬고 어루만져 어린왕자의 ‘장미’로 만들어 놓는다. 나를 포함한 범인들은 정작 주어진 장미조차 가꾸지 못하는데 말이다.
자신에게 간직된 것들이 한 줄의 글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로 재생되는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문학도들의 꿈은 아닐는지... 얼음이라도 태워버릴 듯한 노력으로 자신과 주변의 가치를 다듬어온 ‘인생 선배’로서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애정만큼 아쉬움도 늘어가는 게 사실이다.
한때, ‘외수’라는 외곬에 빠져 즐겁게 허우적거리며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를 넘어 ‘원래 그러했듯’ 나의 한 분신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요즘엔 그때의 신선함이나 격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심취했던 ‘도’도 율도국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향으로 치부한지 오래고, 나 역시 돈에 목숨 거는 속물이란 걸 이미 알아버렸기에 더 이상의 외수적 분위기에 몰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선지 ‘외수’ 하면 떠오르는 이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조금은 변신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또한 작가로서의 문학적 산통을 너무 강조하는 듯 하다.
‘나는 소위 글로서 빌어먹은 작가이며, 글쓰기만큼은 내 뼈를 깎는 인고의 산물이다. 수많은 파지 속을 죽을 똥, 살 똥 헤엄친 다음에야 하나의 문장이 나온다. 니들이 알기나 해? 이 쓰라린 작가로서의 고통을!’이라 외친다.
하지만 너무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이렇게 고통(좋은 글에 대한)에 대한 자신감(?)이 강조되다 보니 옛날 외수님으로부터 느꼈던 어수룩한 친근감은 덜하다. 푸석푸석한 머리를 긁으며 던지는 소탈한 미소를 찾기 힘들다. 내 표현이 짧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외수식으로 표현하자면 ‘형이상학적 결벽증’에라도 갇혀있는 듯한 모습이랄까...


이런 맥락에서인지 평론에 대한 부분 역시 ‘영혼의 발육부진에 빠진 선무당의 치명적 결함’이라 폄하한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는데 니들은 뭐냐! 내 글을 가지고 이렇쿵 저렇쿵 난도질 할 궁리밖에 더 하느냐! 에라-이 기생충 같은 잡놈들아!’ 라 외치는 듯 하다. 마치 평론에 대해 단호한 철갑을 두르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비주류에서 시작해 이정도 위치에 오기까지의 정신적 시달림은 이해가 되지만 조금은 싸잡아서 매도하는 듯한 인상이 깊다. 어느 정도 포용적인 너그러움이 필요한 건 아닐까. 평론가나 이런 잡글(?)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므로...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하지만, 이런 작가적 ‘깡’ 때문에 오늘날의 이외수가 있었으며 이를 기다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부분만큼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춘천시 교동의 격외선당(格外仙堂:이외수님 댁의 사랑방)은 언젠가 들러봐야 할 무슨 성지와도 같은 존재니 말이다.


노란 옷고름을 풀어 그 속살을 훔쳐보듯 조심스레 책을 들춰본 지금, 이 속에 담겨있는 그림 소품들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
글과 짝을 이뤄 잘 어울리면서 심플한 듯, 무심한 듯, 투명하게 휘갈긴 그림들이 여러 줄의 맛난 글보다 더 ‘외수스럽게’ 보인다. 그만큼 이 책에서 차지하는 그림의 비중이 크다.
문득 ‘이 그림 한 장 같고 싶다’라는 소유욕이 고개를 쳐든다.


외수 형님! 이 잡문 귀엽게 봐주시고, 그림하나만 주십쇼~ 예?

분류 :
산문
조회 수 :
3771
등록일 :
2011.04.28
13:00:49 (*.43.57.253)
엮인글 :
https://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798&act=trackback&key=d52
게시글 주소 :
https://freeismnet.cafe24.com/xe/79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sort
53 산문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 이외수 freeism 3994   2011-05-06 2011-05-06 21:35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7/04/30) 읽은날 : 2007/10/14 한때는 소설보다 수필이나 산문을 많이 읽었다. 한 인물에 대한 가식 없는 모습이나 일상의 잔잔함을 편안하게 음미해 볼 수 있기 때...  
52 산문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freeism 4380   2011-05-03 2011-05-03 02:41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생각의 나무 (2002/03/08) 읽은날 : 2005/10/15 달리는 지하철에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순진...  
51 산문 홀로 사는 즐거움 - 법정 freeism 4192   2011-05-01 2011-05-01 01:19
홀로 사는 즐거움 지은이 : 법정 출판사 : 샘터 (2004/06/01) 읽은날 : 2005/01/18 달리는 지하철에서 법정스님이 전하는 자연의 가르침을 듣는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달빛 넘어가는 소리가 지하철의 소...  
50 산문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 이외수 freeism 5333   2011-05-01 2011-05-01 01:10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4/06/22) 읽은날 : 2004/11/29 1. 한 시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싱겁게 읽었다. 2. 작가의 일상을 적은 단편 글과 여백을 채운 삽화가 띄엄띄엄(?) 실려...  
49 산문 느리게 사는 사람들 - 윤중호 freeism 3719   2011-04-30 2011-04-30 01:46
느리게 사는 사람들 지은이 : 윤중호 출판사 : 문학동네 (2000/09/01) 읽은날 : 2004/10/09 느리게... 말 그대로 세상의 흐름에서 조금은 비껴 살아가는 인생들을 그려내고 있다. 돈이라든가 명예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이 정한 기...  
48 산문 인연 - 피천득 freeism 4661   2011-04-30 2011-04-30 01:31
인연 지은이 : 피천득 출판사 : 샘터 (1996/05/20) 읽은날 : 2004/07/28 1. 무더운 여름의 저녁이다. 콱 막힌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을 펼쳐든다. 2단까지 올려진 선풍기에서도 더운 입김만 품어져 나온다. 숨까지 턱턱 막히는 답...  
47 산문 날다 타조 - 이외수 freeism 3739   2011-04-28 2011-04-28 23:48
날다 타조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리즈 앤 북 (2003/10/23) 읽은날 : 2004/04/2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하지만 이외수는 이렇게 말한다 ! “다 땔 치아라!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보라” 백수, 돈, 사랑, 자살...  
46 산문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 김나미 freeism 5604   2011-04-28 2011-04-28 23:47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지은이 : 김나미 출판사 : 황금가지 (2003/10/11) 읽은날 : 2004/03/27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허탈감이 무겁게 짓누르는 요즘이다. 내 어깨에 짊어진 온갖 무...  
» 산문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이외수 freeism 3771   2011-04-28 2011-04-28 13:00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3/07/01) 읽은날 : 2003/11/19 올 초부터 지루하게 읽어오던 박경리님의 토지(土地), 그 무게에 눌려 다른 책을 볼 엄두를 못 내다 잠깐 짬을 내어 인근 '...  
44 산문 학교종이 땡땡땡 - 김혜련 freeism 4817   2011-04-28 2011-04-28 12:58
학교종이 땡땡땡 지은이 : 김혜련 출판사 : 미래 M&B (1999/10/20) 읽은날 : 2002/12/20 "시팔, 졸라 재수 없어" 스치는 듯 지나가는 한 학생의 말을 들었을 때, 한없는 무력감으로 스스로 초라해진다.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43 산문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 진시륜 freeism 3659   2011-04-28 2011-04-28 12:16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지은이 : 전시륜 출판사 : 명상 (2000/10/12) 읽은날 : 2002/11/07 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그것만큼 진솔한 얘기가 또 있을까. 화려한 겉모습은 아닐지라도, 미흡한 ...  
42 산문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 도종환 freeism 3894   2011-04-28 2011-04-28 12:12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지은이 : 도종환 출판사 : 사계절출판사 (2000/11/20) 읽은날 : 2002/10/15 오늘은 '이종환의 디스크 쇼'가 아닌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듣는다. '이종환'이라는 DJ와 동명이라는 것 때문인...  
41 산문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 장정일 외 freeism 3780   2011-04-28 2011-04-28 12:06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지은이 : 장정일 외 출판사 : 행복한책읽기 (2001/11/23) 읽은날 : 2002/07/15 장정일. 아니나다를까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거짓말 사건'이다. 그 사건이 한창 불거져 나올 무렵 책방에서 일하던 한 친...  
40 산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 - 미치 앨봄 (Mitch Albom) freeism 3824   2011-04-28 2011-04-28 12:04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 지은이 : 미치 앨봄 (Mitch Albom) 옮긴이 : 공경희 출판사 : 세종서적 (1998/06/10, 7200원) 읽은날 : 2002/07/09 왠지 모르게 교화적인 분위기일거라는 생각에 책을 앞에 놓고 ...  
39 산문 아름다움도 자란다 - 고도원 freeism 3525   2011-04-27 2011-04-27 23:53
아름다움도 자란다 엮은이 : 고도원 출판사 : 청아출판사 (2002/03/07) 읽은날 : 2002/05/31 고도원님이 읽은 책들 중에서 좋은 글들만을 모아놓은 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잠언집, 명상집이라 보면 될 듯싶다. 내가 한때...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