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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설계자들


지은이 : 김언수
출판사 : 문학동네 (2010/08/15)
읽은날 : 2011/01/03


설계자들  호젓한 숲을 찾아 자리를 편다. 러시아제 7.62구경 드라구노프를 조립하며 오늘의 목표물을 생각한다. 망원렌즈에 초점을 조정하고 목표물을 확인한다. 노리쇠를 후퇴시켜 장전시킨 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호흡을 고른다. 휴~, 십자로 그어진 조준선에 목표물에 맞추고 죽음의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탕! 허공을 가르는 탄환이 십자로 그어진 목표물에 내리꽂힌다. 그리고 흩어지는 피. 피!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전문 킬러의 ‘죽여주는’ 이야기로 낭자해진 붉은 피를 보는 것처럼 자극적이고 감각적이다. 검붉게 눌어붙은 피를 보는 것처럼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 긴장감 속에 스며있는 위트가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한다. 중국 액션 영화 같은 초반의 삼엄한 분위기는 글을 조이고 푸는 작가의 글솜씨를 타고 화려하게 살아난다.
 사실 김언수 라는 작가 이름을 들었을 때는 <밤은 노래한다>의 김연수로 착각하고 역사성 짖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날개지에 삽입된 저자소개에는 <밤은 노래하다>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김연수가 아니라 ‘김언수’가 아니던가. 그러자 뭔가 새로운 흥미가 발끈해졌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서평 역시 새로운 작가에 대한 기대와 칭찬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시작된 관심을 책을 읽는 내도록 가시질 않았고 화학반응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제처럼 <설계자>의 강렬함을 배가 시켰다.


 래생(來生). 이것은 <설계자>에 등장하는 킬러의 이름이다. 중국식 이름 같기도 하고 유럽풍의 버터향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국적인 이름, 하지만 그 고상한 이름 뒤에 숨겨진 그의 행적은 무시무시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가 죽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관심 밖이다. 그저 청부살인 브로커인 너구리 영감의 지시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는 잘나가는 살인청부업자였다. 그는 단지 설계자의 면밀한 계획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기계였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변기에서 앙증맞은 폭탄이 발견되면서 평탄하던(?) 그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과연 누가 자신을 노리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의 이유라도 알고 싶었던 래생은 트래커(설계자나 중간브로커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일종의 정보원)인 친구의 도움으로 미토라는 여자를 추적한다. 얽히고설킨 미궁의 실타래같이 살인자와 설계자, 브로커가 뒤엉키며 더욱 혼란스러워지는데... 하지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그들의 머리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더욱 즐거워진다.


 “나는 이 집 곱창을 먹을 때마다 신의 내장에 대해 생각을 해. 인간이 보지도 상상하지도 않는 신의 내장. 높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 안에 감춰져 있는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한 것들 말이지 우아한 것들이 뒤에 감추고 있는 치사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뒤에 감추고 있는 추악한 것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 뒤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짓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필연적으로 내장이 있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 (p292)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난잡함, 그 혼돈의 길 위에 선 킬러, 90년대 유행했던 주윤발식 느와르나 암울한 미래를 리얼하게 그린 블레이드 러너,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현상범을 사냥하는 <카우보이 비밥>이 묘하게 겹쳐졌다. 하지만 말초적이고 자극적이지만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설계자들>에서 보여준 설계자, 브로커, 트래커, 청부살인자는 비일상적인 요소들로 가득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현실 역시 그리 깨끗하지만은 못했다. 어제 저녁 9시 뉴스만 하더라도 벌써 몇 명이 죽거나 다쳤는지 모르겠다. 교통사고, 화재, 자살, 그리고 살인, 폭행, 강도, 강간... 하지만 이렇게 눈에 드러난 범죄는 오히려 양반이라고 봐야할까. 정치, 경제, 법의 힘을 등에 없고 이루어지는 온갖 부정과 악행을 부지불식간에 자행되었다. 정치인의 음흉한 미소 뒤에서, 기업가의 뒷짐 진 손을 통해서, 법이라는 합법을 가장해서 그들의 검은 속을 채웠다.
 소설이 소설 속 이야기로만 끝나야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은 은근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마음을 깨끗이 정리해 줄 ‘설계자’는 없는 것일까. 일상과 허구 사이의 넘어설 수 없는 괴리감은 여전한 것 같다.
 엄청난 작가의 등장이라는 평가가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류 :
한국
조회 수 :
6058
등록일 :
20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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