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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白雲)속의 눈꽃 산행 (전남)


여행지 : 백운산
여행일 : 2009/03/14
사진첩 : 백운(白雲)속의 눈꽃 산행 icon_slr1.gif


버스에서 내리자 계절을 착각한 커다란 눈송이가 사선으로 달려든다.
여기는 백운산 초입의 답곡, 장비와 옷을 챙기고 참샘이재로 가는 기-인 산행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함께 출발한 산악회 중 일부는 한재까지 곧바로 올라가는, 조금은 단축된 코스를 선택했지만 우리를 포함한 몇 명은 참샘이재와 따리봉을 둘러 한재, 백운산 정상까지 가는, 조금은 긴 능선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멀게만 보이는 지도를 보니 조금은 걱정도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젊은 녀석이 겁먹은 소리부터 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은근히 발동하기 시작한 내 오기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죽을힘을 다해 따라붙는 수밖에...


신작로마냥 넓게 뻗은 임도를 따라 몇 분을 걷자 점차 산길이 다급해졌다. 3월이라는 계절에 비해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허연 입김이 연신 뿜어져 나온다.
얼마쯤 올랐을까, 주변의 산군이 점차로 발아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저만치서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허연 하늘이 보였다. 저기가 능선이라는 생각에 힘이 났다. 저기만 넘으면 한고비는 해결한 샘이리라. 물 한 모금에 힘을 얻어 참샘이재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꼬리를 늘어뜨린 설빙


프랙탈, 자연의 무한반복
왼쪽으로는 근엄하게 솟은 도솔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따리봉이 굵어진 눈발에 가려 아련하게 보인다.
순간, 앙칼지게 날을 세운 칼바람이 귓불을 할퀸다. 능선길이라 조금은 편해질 거라는 생각은 매서운 얼음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차갑게 불어 닥친 바람은 땀에 젖은 내의를 얼려버렸고 벌겋게 상기된 귀를 더욱 시리게 했다.
하지만, 능선 위에 내려앉은 순백색의 눈꽃들을 보자 얼어붙은 마음이 일순간에 녹아버린다.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새신부 같은 모습에 ‘이야~’하는 탄성은 절로 나왔다. 한발 다가서자 나뭇가지에 달린 수많은 레이스가 더욱 빛을 발했다. 바람의 꼬리를 늘어뜨린 설빙은 빠른 속도감으로 모션 처리된, 현실세계의 움직임을 정지시켜 놓은 것 같다. 나뭇가지가 달리는 것인지 내가 달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거기다 하늘을 뒤덮은 하얀 나뭇가지는 백운산의 비기라도 담고 있는 암호문처럼 난해해 보였다. 자신을 닮은 문양을 무한 반복하는 프랙탈처럼 날 빨아들인다. 얽히고설킨 우리의 인생사처럼.


피곤, 냉동과 해동이 반복된 물 빠진 고기 같다고나 할까.
따리봉을 지나 한재에 이르자 다시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길어진 산행만큼 다리는 뭉쳐왔고 무릎에서 시작한 뻐근함이 허벅지까지 이어졌다. 천천히 산길을 오르자 뭉친 근육은 이내 풀어져버렸지만 얼마 후면 또다시 저려오리라. 무엇보다 뭉침과 풀림이 반복되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 걱정이다. 냉동과 해동이 반복된 물 빠진 고기 같다고나 할까.
이럴 땐 뭐니 뭐니 해도 밥, 밥이 최고다! 정상을 조금 남겨둔 지점에서 일행이 준비한 점심을 꺼냈다. 응달에 자리를 잡은 터라 온몸이 오들거렸다. 떨리는 젓가락으로 얼어붙은 음식을 집어 기계적으로 씹어 넘겼다. 왕년에 이외수님이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기 위해 먹었다던, 그 얼음 밥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차가운 첫 번째 맛과 꼬돌꼬돌한 두 번째 맛이 입안의 온기와 어우러져 묘한 감촉을 자아냈다.


살얼음같이 펼쳐진 만찬을 마치고 백운산 정상(1218m)에 올랐다. 둥그스름하던 산세와는 달리 정상 표지석은 몇 평되지 않는 바위위에 세워져 있다. 추운 날씨지만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주변 사람에 밀려 떨어지지나 않을까 위태로워 보였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 우리도 질세라 바위를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얼어버린 미소와 함께 간신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운산 정상에서


오후가 되자 기온이 더 내려가는 것 같았다. 선행팀이 남긴 이정표를 찾으며 간신히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길이라 사람의 흔적마저 희미했다. 숲 속에 숨겨진 길을 찾아 기나긴 돌길을 내려가지만 흔들거리는 무릎을 진정시키기에 발아래 깔린 개수가 너무 많다. 쿵 쿵, 여기저기서 일행의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산길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내화마을에 들어서자 다른 회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귀향버스에 올랐다.


하얀 구름과 함께 즐긴, 백운(白雲)속의 눈꽃 산행이여!
귓불을 스쳤던 얼음바람의 날카로움과 백운산을 뒤덮은 하얀 눈꽃의 포근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아리봉에서 본 백운산(우측이 백운산 정상)

분류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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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5
등록일 :
2011.05.19
21:21:22 (*.182.2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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