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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경주기 (1/2)


여행지 : 경주, 대릉원, 첨성대, 반월성, 석빙고, 안압지, 경주박물관, 황룡사, 분황사
여행일 : 1999/12/23


신라의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누리고 살아온 땅.
나는 그 곳엘 갔었다.


22일 오후에 서울발 대구행 기차에 올랐읍죠. 자다가, 졸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덧 대구. 마침 경주까지 가는 열차가 바로 있어 조금은 편히 갈 수 있었죠. 어둑어둑한 저녁에 도착한 경주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23일) 본격적인 여행길에 올랐읍죠.


대릉원경주 역에서 30분 정도 시청 방향으로 가면 대릉원이 나옵니다. 릉원 입구를 찾지 못해 릉원 돌담길을 따라 봉분들을 보면서 걸어갔었는데... 이런...
돌담길 너머로 오똑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젊은 아낙의 하얀 젖가슴처럼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실제 공원 안에는 저의 야릇한 생각과는 달리 너무 조용하더군요. 어릴 때 왔을 때의 거대함에 못지 않게, 지금의 느낌으로도 무지 크더라구요. 이건 도대체 무덤이 아니라 '산'이라 불러도 될 만큼의 크기를 하고 있데요. 규모와 비례해 축조 당시의 사람들의 노력(착취)가 느껴지더군요.
죽은자를 위해 산자를 죽이는 현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천마총, 천마도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라 이름을 붙였다는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솔직한 느낌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던데...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왕의 무덤이 다 까발려져 있는 모습이라니... 죽은 자의 영토를 뚫린 구멍으로 기웃거리는 공인된 도굴꾼...


첨성대대릉원을 둘러보곤 첨성대로 향했읍죠. 생각보단 아담하게 자리잡은 모습이 소담하게 보이더군요. 하늘을 연구했다는 천문대치고는 좀 외소한 느낌었거든요. 하지만 '선' 하나는 끝내주더군요. 모나지 않고 격하지 않게 둥글둥글한 모습이 주위의 산과 자연에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근데 입장료가 300원(대릉원은 1500원)이라는 말에 주변 담벼락에서 먼 발치로만 지켜봤읍죠. 첨성대 주변을 몇 바퀴 돌아보며 박물관 쪽으로 갔읍죠.
'계림'이라는 곳이 나오던데 김알지의 전설이 내려온다는군요. 근데 역시나 요금표가 걸려있더군요. 아예 지역 단위로 5~6000원 정도 일괄적으로 받으면 될텐데 500원, 1000원, 2000원씩... 한발 움직일 때마다 '돈', '돈'하니까 보기에 별로 안좋더라구요. 물론 문화재 보호와 관리를 위하는 일이란 건 알지만...
'선사를 대하는 후세의 또다른 태도...'


계림을 조금만 지나면 작은 구릉지(언덕)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반월성입지요. 신라시대 궁이 있었다는 곳인데 지금은 주춧돌 몇개와 석빙고 외에는 넓은 공터만 남아있거든요. 어릴 때 유치원에서 이곳으로 소풍와 뛰어 놀던 기억이 나데요. 그땐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었는데...
2~300평은 족히 될만한 평지로 축구라도 한판 땡기고 싶을 정도로 탁 틔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옛날 냉장고-석빙고가 있읍죠. 내부를 잠깐 봤는데 우-아... 이빨이 꽉 물려 꼼꼼히 만들어진 모습이 옛날의 화려한 솜씨와 그에 따른 영화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도 냉장고로서의 기능이 살아 있을지 궁금할 따름...


안압지11시쯤 반월성을 돌아나와 안압지로 향했습니다. 옛날의 기억보다 훨씬 크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더군요. 지금은 보수공사로 연못의 물을 모두 빼놓은 상태였는데 빨리 복원되어, 아니 진지하고 천천히 복원되어 그 옛날의 풍류와 멋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으면... 안압지를 한바퀴 돌아봤었는데 수조유구(안압지 입수로)의 용 두마리가 흐리게나마 남아 있더군요. 세월의 상흔으로 그 날카롭고 용맹함은 사라져버리고, 부드럽고 온화한 흔적만 가까스로 보이더군요.
용의 기상과 날카로움도 세월 앞에서는 한가닥의 촛불이려니...


안압지 앞에는 국립경주박물관(400원)이 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첫눈에 날 반기는 소리가 보였는데 바로 '에밀레종'이었죠. 선덕대왕 신종... 보는 이로 하여금 크기에 압도되지만 그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하는 종...
그 에밀레종과 함께 제 눈을 끈 것은 역시 종을 구조물에 매달아 지탱하게 하는 걸쇠(?). 신종을 구 경주박물관에서 이곳 신 박물관으로 옮길 때 이 걸쇠를 현대 중공업에서 다시 만들었는데 결국에는 종의 무게에 휘어져 버리고 옛날 에밀레종의 걸쇠를 다시 사용해 매달아 놨다는군요.
오늘날의 기술과 과학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그 무엇.
바로 사랑과 정성이 아닌가 싶네요.


박물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2시. 아침부터 배낭을 매고 걸어다닌 터라 옴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마침 박물관 앞에 국밥집이 보여 한끼를 처리하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기로 했읍죠. 근데... 국밥 맛이 기가 막히데요~
후루룩~ 후루룩, 깍두기에 고추 한입...
배가 부르니 움직이기도 싫어지던데... 그래도 여꺼정와서 맹숭맹숭 있을려니 그러긴 싫고... 황룡사지를 지도책에서 봤었거든요. 그 9층목탑으로 더 유명해진 절. 거리가 좀 되긴 했지만 마땅한 차편도 자주 없고 배도 꺼줄겸 천천히 걸어 갔었죠.
한층 가벼워진 어깨를 타고 불어오는 신라의 바람... 좋더군요.


황룡사지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과거 진행형의 역사, 황룡사지... 마치 너른 평야위에 홀로 지나는 느낌이더군요. 그 찬란한 문화는 어디에도 없고 주춧돌만이 황량한 들판의 주인이 되어 바람을 지키고 있더라구요. 9층목탑과 금당(대웅전)터의 주춧돌이 너무 허전해 보이더군요. 인생무상...
삼국통일의 염원으로 성대한 한판 잔치를 벌렸으되 몽고전으로 모든것이 일장춘몽으로 사라졌도다... 모두가 그 불길로 사라졌다지만 분명 이땅에 사라지지 않은 기운은 여전히 존재하리라...


황룡사 뒤쪽에 자리잡은 분황사(1000원)는 황룡사에 비해 왠지 모르게 더 초라해 보이더군요. 황룡사는 발굴이다, 역사인식이다 해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지만 분황사는 그 유명세-모전석탑-에 걸맞지 않게 경내에는 석탑만이 절의 쓸쓸한 분위기를 받치고 있더군요. 절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원래 9층이라는 모전석탑의 파편(지금은 3층만 남아있거든요)들이 더 쓸쓸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풀리지 않는 역사의 파편, 파편을 끼워 맞추기위한 숙제. 아니 세월의 수수께끼...


5시쯤 분황사를 뒤로하고 버스에서 내린 곳은 불국사 정류장.
험상궃은(?) 아저씨의 권유와 나의 지략(?)으로 흥정을 벌인 끝에 12000원(첨엔 20000원이라더니)에 방을 잡았죠.
맥주 두병을 까고 내일의 산행(토함산)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죠.

분류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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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등록일 :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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