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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철쭉 산행기 (4/4)


여행지 : 백둔봉, 동강
여행일 : 1999/05/31


우리가 마지막으로 잡은 여행지는 요즘 한창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강댐이 들어선다는 동강의 어라연을 끼고 있는 잣봉이라는 산입지요.


1시에 영월터미널에서 거운리행 버스를 타고 동강을 거슬러 올라갔읍죠.
영월을 막 벗어나니 깎아지는 듯한 산과 산 사이를 유유히 비집고 돌아나가는 동강의 모습에 취해 30분 정도의 버스속의 시간도 금방 지나가더군요.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약간의 씁쓸함...
어려운 농촌경제의 '구세주'격이 된 동강, 그리고
몰려드는 사람과 '자랑스런 국토건설'이란 이름으로 병들어 가는 동강의 두 이름...


거운리의 거운분교 앞에서 내려 지도랑 나침반, 안내책자를 보면서 '잣봉'으로의 길을 한 걸음씩 나아갔읍죠. 거운분교에서 잣봉, 어라연 가는 길이라고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더군요.
길을 따라 20분 정도 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어라연으로 바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거운리나 잣봉으로 가는 길이라 왼쪽편 길로 계속 갔읍죠. 아직 산길도 아니데 사흘간의 고행(?)때문인지 땀이 무지 쏟아지더군요.
계속되는 오솔길, 내리쬐는 햇빛...길은 계속되고 ... 들고간 안내책에서 보면 빨간 벽돌집에서 조금 더 가면 산행길이 시작된다 했지만 어디를 봐도 산길은 안보이데요. 한참을 헤매다 근처 고추밭에서 일하시는 아저씨에게 물어보고서야 제대로 산을 탈 수 있었죠.


길 언덕 부근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의 입구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여간해서는 찾기도 힘들지요. 길 역시 사람의 흔적이 희미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천천히 올라갔읍죠. 20분 정도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길을 지나 50도에 육박하는 오름길이 계속 이어지데요. 흙으로만 된 산이 이런 경사를 가지고도 안 무너진다는 게 정말 이상할 정도로 경사가 심했거든요. 오르면서도 이 산이 잣봉이 맞는지도 의문이 가고~ 분명 안내책에서는 경사가 이렇게 급하다거나 길이 잘 안 보인다거나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거든요. 두 발 옮기고, 한걸음 쉬고... 이렇게 1시간 반정도 오르고 쉬고, 오르고 쉬면서 올랐읍죠.


정상... 나무에 메어진 빨간 깃발하나... "어라? 이거 잣봉 맞어?"
나무가 울창히 자라서인지 동강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반대편으로 나있다던 어라연 가는 길은 보이지도 않더군요.
1시30분부터 3시간동안 죽을 힘으로 찾아 헤매고 올라온 산이라기에는 좀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죠. 그래도 우야겠습니까. 올라왔으면 내려가야지요.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쯤 고추밭에서 일하고 쉬고있는 아저씨를 만나 다시 한번 물어봤었죠.
"아저씨, 이산 잣봉 맞아요"
"응 잣봉 맞는데..."
"잣봉에서 어라연으로 나오는 길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길을 못 찾겠데요."
"어... 어라연으로 갈려면 이 잣봉이 아니고 저 잣봉을 올라가야지..."
"예?"
"이건 옛날 잣봉이고 저기가 요즘 잣봉이데... "

... 헉! 저 산도 아녔던가벼~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가 오른 산은 옛날에 잣봉이라 불리던 백둔봉(694)이라더군요. 그때서야 우리가 원래 찾던 '잣봉' 가는 산길이 빨간 벽돌집 바로 옆에 있는 걸 발견했었죠.
하루종일 헤매다 엉뚱한 산만 돌아다니다 온 꼴이라니... 친구랑 함께 투덜투덜!
"에이 X같은 잣봉. 잣봉이 아이고 X봉이네..."


동강거운분교까지 내려오니 영월까지 가는 버스시간이 조금 남아 잠시 동강을 둘러봤었죠. 레프팅을 즐기는 팀이 어라연 쪽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강 건너편에서는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이고... 참 좋더군요. 산이 있고 강이 있는 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곳에 동강댐이 들어선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죠. 다른 곳에 있는 댐이랑, 복개도로를 헐어내도 시원찮은 판에 다시 하나를 더 만든다니... 우리의 자연은 지금의 우리만 즐길 것도 아니고, 약간의 편의와 이득으로 바꿀 수도 없는 일인데 말입죠.
그리고 여기 저기 붙어있는 동강댐 반대 현수막들... 영월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이 붙어있더군요. 무슨무슨 동창회로부터 연합회, 협회, 모임, 동사무소 등 동강댐의 건설을 반대하는 건지 아님 자기 단체를 동강을 빌미로 광고하자는 건지... 오히려 현수막으로 인한 오염이 댐의 파워(?)를 능가하리라 생각하니 좀 우습더군요.
정말 어디로 가려나~ 무얼 찾아가려나~ 한번 흘러버린 물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법인데...


7시쯤 동강을 뒤로하고 영월을 지나 서울로 왔었죠. 피곤한 여행이었죠. 하지만 그만큼 보람있는 여행이었어요.
민족의 줄기 태백산을 둘러봤고, 두위봉을 통해서 철쭉의 분홍빛에 희석되어 가는 탄광촌의 흥망을 봤으며 동강에 대한 진실과 거짓의 양면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잣봉에 다시 가야할 또다른 이유가 생겼죠.

분류 :
자연
조회 수 :
1418
등록일 :
2011.05.10
00:17:46 (*.182.2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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