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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을 걸어보니 ( 1/2, 경북 부석사)


여행지 : 소수서원, 소수박물관, 부석사
여행일 : 2006/02/04
사진첩 : 소수서원, 부석사 icon_slr1.gif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


나의 머릿속은 ‘무량수전’이라는 단어로 가득했다.
물론 학문적인 목적이나 종교적인 신심에서도 아니다. 뭐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들러야 할 무슨 성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최순우님의 미려한 글로부터 시작된 오랜 기다림을 이번 겨울에야 실행에 옮겼다.


소수서원 가는 길에쌀쌀한 날씨 속에 도착한 영주는 생각 외로 아담하다. 소백산이나 부석사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 영주를 더 과장되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주역사에 준비된 관광안내서를 챙겨들고 소수서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소수서원은 영주에서 부석사로 이어진 동선 중앙에 위치한 까닭도 있었지만 일단은 ‘최초’라는 말을 달고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까닭(최초의 사액서원)에 그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싶었다. 아마도 도산서원(천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알려진 서원이 아닐까 싶다. 또한 ‘학교’라는 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수하게 들리는 어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던가? 서원으로 들어서자 ‘공사중’이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아쉬운 마음에 공사천막 뒤에 가려진 강학당을 훔쳐본다. 기와가 있던 자리의 낡고 빛바랜 받침목들이 세월의 폐기물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선비들의 기거공간이었다는 직방재, 일신재는 직접 볼 수 있었다. 조금 색다른 형식의 구조물로 십자형태의 방과 그 옆면에 수줍게 자리 잡은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왠지 방구들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을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다.


경렴청      직방재와 일신재      반가사유상, 누가 부처인가?


소수서원을 돌아나가면 소수박물관이 보인다. 소수서원의 역사와 관련해 여러 자료가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특히 반가사유상이 기억에 남는다. 은은한 미소와 사색하는 자세가 좋아 나중에라도 꼭 장만하고 싶은 불상인데 반가상 뒤쪽으로 동행한 친구의 미소 띤 모습이 오버랩 되자 그 신비감이 한층 더해진다. 촬영금지라는 문구를 한 귀로 흘리며 그 모습을 담았다... 과연 누가 부처인가? ^^
하지만 몇몇 전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성으로 둘러본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하니 당연할 수밖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기억난다. 부족한 사랑을 자책하며 부석사행 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범종루 아래에서 본 안양루은행나무로 둘러싸인 잔잔한 외길을 올라가 부석사 천왕문을 지나면 저 멀리로 범종루, 안양루가 날씬하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늘-씬한 아가씨의 소탈하면서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는 듯 절로 흥겨워진다.
특히 범종루 아래로 들어서면 까만 액자속의 노란 그림 같은 안양루가 찬찬히 다가온다. 박물관의 전시물을 둘러보듯 좌우로 발걸음을 아끼며 걸어간다. 그렇게 한발 한발 계단을 올라서자 그림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안양루가 순식간에 현실로 다가온다. 위풍당당하게 선 커다란 돛을 단 범선처럼...
책에서 읽은 것처럼 무량수전까지 오르는 ‘눈 맛’이 재밌다. 다음은 어떤 장면이 나올까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다고 한달음에 달려가서 본다면 ‘명작’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다. 천천히, 주변의 산과 바람을 느끼면서, 처마 끝에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안양루를 지나자 석등이 살포시 보이는가 싶더니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무대가 열리듯 무량수전의 단아한 모습이 서서히 펼쳐지자 수줍게 내려감은 눈꼬리처럼 무량수전의 처마도 살포시 올라간다.
아~ 무량수전,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두 날개를 활짝 열어 나를 반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날렵한 몸매에 왼쪽으로 살짝 비껴 앉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잃어버린 옛사랑을 만난 선머슴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재어본다.
역사책의 근사한 설명 없이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한국의 미’가 이런 게 아닐까...


석등과 무량수전      무량수전의 처마      부석사의 석양


해가 점점 기울어 소백산에 걸리자 한 스님이 석등에 부조된 보살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석양이 보살상의 왼쪽을 붉게 물들이자 이에 화답하듯 오른편으로 어스름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석양의 보드라운 이불을 덮어서일까. 보살상의 눈이 스르르 감기며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우리는 배흘림기둥으로 떨어지는 해를 쓸어안으며 겹겹이 옅어지는 둥근 소백산을 바라본다.

분류 :
문화
조회 수 :
2953
등록일 :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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