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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화왕늪 (1/2, 경남)


여행지 : 창녕, 관룡사, 관룡산, 화왕산성, 화왕산
여행일 : 2002/08/20


잔뜩 구름이 낀 날씨, 언제 빗방울이 떨어질지 모르겠다. 일기예보에선 경남에 한두 차례 비가 온다던데... 비를 맞고 혹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비와 땀에 쩔어 투덜거리며 걷고있을 나를 생각하니 약간의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일단 짐을 꾸렸으니 떠야지!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해뜨면 해뜨는 데로, 비오면 비오는 데로 나만의 호젓한 산행을 즐기련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창녕행 버스에 오른다.


한시간 반 후, 창녕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부산에서의 근심과는 다르게 맑게 개인 날씨가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산에 가기엔 '딱'인 날씨였죠.
근데... 옥천까진 어떻게 간다? 즐비하게 늘어선 택시에 비해 버스 정류장은 대구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야 있습니다. 전 버스시간이 안 맞아 택시로 옥천 관룡사로 이동했었죠.


관룡사관룡사매표소(1000원)에서 내려 계곡을 따라난 포장길을 20여분 올라갑니다. 상큼한 느낌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길을 열어주는데, 명상음악을 들으며 산보하듯 천천히 걸었죠.
곧이어 관룡사에서 흘러나오는 법종과 목탁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은은한 그 소리만으로도 반은 극락에 온 듯한 느낌이더군요. 절을 둘러싸고 있는 포근한 산세 때문인지 절은 꽤나 아늑하게 보입디다. 어쩌면 절이 갖고있는 진귀한 문화재의 양보다는 이런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깊이가 절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1시 20분, 절을 둘러본 후 그 옆으로 난 산길(청룡암 방향)을 통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점점 산을 달궈놓는 열기 때문인지 얼마 오르지 않아 땀이 비오듯했지만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아 천천히 쉼 없이 오를 수 있었죠.


청룡암 약수터관룡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청룡암에 이르는데 빼꼼이 열려진 문은 '출입금지'라는 어떤 엄중한 경고보다도 더 신중해 보이더군요.
"문은 열려있다. 산중수도를 방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어디한번 들어와보라"라는 일갈처럼...
법정스님의 말처럼 조용한 산사에 부지불식간에 쳐들어가는 '방해꾼'은 되기 싫어 약수만 한 사발 뜨고 산행을 계속합니다.


천천히 경사면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숲에 가려진 하늘이 조금씩 열리면서 급기야 화왕산을 잇는 능선길에 이르죠. 바위로 울퉁불퉁한 능선길을 로프를 중심으로 조심스레 건너가는데 주변의 낭떠러지가 마음 한구석은 어지럽히나 한편으론 절벽너머로 둘러쳐진 하늘과 산이 절 무지 설레게 하더라구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용선대 헬기장(지도에 표시된 관룡산(740m)이 아닐까 추정)을 지나면서 부드러워지는 능선길이죠. 숲이 우거진 시원한 공기, 키작은 산풀이 낮게 드리운 시원한 능선길을 갑니다.
어릴 때 봤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되어 요들송처럼 경쾌하게~


갈림길(왼쪽-화왕산성, 오른쪽-능선길)그렇게 즐기며 걷기를 잠시, 화왕산 중간의 고개에서 한 임도와 만나게 되죠. 망할놈의 도로는 화왕산 능선길을 십자형으로 가로지르며 뻗어 있더군요. 씁쓸... '개발'의 바람 앞에 신중하지 못했던 아픈 흔적들을 뒤로하고 길을 갑니다. 화왕산성(동문)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로 갈까 하다 그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뻗어있는 능선길을 택했었죠.
하지만,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더군요. 열흘이상 내린 비로 쑥쑥 자라버린 풀은 사람이 뜸했을 능선길의 대부분 덮고 있는데, 밀림에서나 쓰일법한 기다란 칼이 없다면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정글숲인지라...
별수 있나요... 화왕산성(동문)으로 이어지는 널따란 길로 산행을 계속했었죠.


그대여 하늘에 별이 되소서2시쯤, 동문 옆, 길 오른쪽으로 조그만 움막이 보이던데 알고 보니 경북대 아마추어 천문회에서 관리하는 별터(임시 막사)라는 곳이데요. 맑은 날 밤, 이곳에서 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부럽게 보이더라구요. 근데 별터 뒤에 조그만 비석이 눈에 띄더군요.
"그대여 하늘에 별이 되소서"라고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알아보니 별터 공사중 천문회의 박재홍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더군요) '홍이'라는 분, 그리 외로워 뵈진 않더라구요... 별과 함께 경북대 친구들이 있을 테니 말이죠...


화왕산성, 배바위간단한 요기를 마친 후, 무성한 숲길을 헤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반소매, 반바지를 입었던 전 팔과 다리에 온통 긁힌 흔적들뿐이었지만 가을이면 화왕산 일대를 뒤덮는다는 억새밭을 그려보며 화왕산 능선길을 걸어갔었죠. 화왕산성의 모습과 화왕산의 넓은 분지, 그리고 경남을 내려다보는 듯한 배바위의 비범한 모습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3시쯤 화왕산(755m) 정상에 올랐습니다.
나무그늘 하나 없이 사방이 휭-하니 트여 있는데 태양 빛이 무지 따갑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올라올 때의 땀만큼이나 태양은 뜨겁지만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산과의 일체감은 그 무엇보다 상쾌하게 다가오더라구요.
깎아지는 바위 아래 둥지를 튼 창녕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도시 주변에 박혀있는 저수지와 늪... 사방이 온통 산이지만 진청색에서 연두색, 회색으로 옅어지며 펼쳐지는 색감은 마치 수묵화 속의 아득한 풍경을 보는 듯 하더군요.


화왕산(755m) 정상에서하산은 창녕방향의 능선길로 방향은 잡았지만 이내 계곡 길과 합쳐지더군요(지도와는 다른 등산로들, 하지만 창녕 방면의 길은 많은 가지를 두고 뻗어 있어 결국 하나로 통할 터). 천천히... 조심조심... 아직 많은 습기를 먹음은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중턱쯤 내려왔을까 여러군데 벤치가 있는 것을 보았죠.
명상의 숲, 독서의 숲, 시가 있는 숲 등 공원을 꾸민 생각은 좋았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만한 거리를 땀흘리며 찾아와 독서를 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비교적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게 자리잡은 느낌(너무 많은 안내판만 빼고는)이더군요.


자하골 매표소를 통해 내려와 민박도 알아볼 겸 창녕군까지 걸어갔었죠. 그렇게 해서 오후 6시쯤엔 부푼 가슴으로 출발했었던 창녕군 터미널로 다시 되돌아오게 됐죠.
아하! 여행길이 바로 인생이 아니던가. 시작과 끝은 언제나 하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여행길, 인생길...


축배...근데 여관은 간간이 보이는데 민박은 도통 보이질 않더라구요. 한시간여를 더 헤맨 끝에 창녕 제일교회 앞에서 겨우 여인숙(10000원)을 발견했죠. 그래도 여행인지라 그냥 자기가 뭣해 닭 두쪽이랑 맥주 두병으로 간단한 축배를 들었죠.
"역시나... 역시나...
동키치킨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어... ..."

분류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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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등록일 :
20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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