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에는...
똥 없는 세상이 열리다
하지만 나의 분신 같았던 조터와의 동거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 년 가까이 나의 왼쪽가슴에 자랑스럽게 꽂혀있던 조터가 실수로 와이셔츠와 함께 세탁기에 들어가고 말았는데 검은 잉크를 가득 머금은 체 뜨거운 물과 세제 속에 몇 시간을 뒹굴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잉크가 물에 많이 번지지 않아 함께 넣었던 빨래가 눈에 띄게 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블루베리 색의 내 분신만은 검은 똥을 토하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똥이라고는 누질 않는 조터의 몸에는 끈적끈적함만 가득했다. 찐득하게 묻어나는 검은 똥은 지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내 손에 진한 흔적만 남기고 있었다. “아. 조터여, 이렇게 똥에 굴복하는 것이냐! ...”
그렇게 그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던 차에, 조터 볼펜 하나가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놈만큼 애착이 가질 않았다. 나의 첫사랑도 아니려니와 대학홍보용 문구가 새겨진 사은품인지라 온전히 내 것 같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세 달을 못 넘기고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분실에 대한 애절함도 전보다는 훨씬 덜했다. 하지만 나에게 똥 없는 멋진 신세계를 알게 해준 그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으랴. 굳은 마음으로 입양을 결심하고 인터넷을 뒤져 이전에 썼던 놈과 같은, 블루베리 색의 조터 볼펜으로 주문했다. 조터(jotter)를 그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