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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에는...

철인3종 놀이마당 (2015 경주 트라이애슬론대회 완주기) 


   춘천마라톤대회(2012년)과 중앙서울마라톤대회(2014년)을 비롯한 수십번의 단축마라톤대회, 몇번의 바다수영대회를 완주했지만 단시간에 결판을 내는 대회는 여전히 두렵고 낯선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대회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몇 개월 전부터 수 십, 수 백 km씩 연습을 해야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끈기와 자기 절제가 필요한데, 퇴근 이후의 나른한 몸은 오늘의 연습을 내일로 미루게 만들고, 모처럼 있는 회식자리에서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한다. 거기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쌀쌀한 날씨 속을 훈련을 위해 집 밖을 나간다는 것 또한 상당한 고역이다. 이런 어려움들이 있다보니 대회 참가가 상당히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부터 '주어진 시간 안에 골인할 수 있을까', '무리하다가 다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하지만 어떻게든 대회를 신청하고 나면 스스로를 단련하며 연습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나 같은 초보에게는 기록보다는 뛰다가 죽지 않기 위한(?), 완주를 위해 연습하는 거리를 늘리는 것이 연습의 주목적인지라 이런 중차대한 행사를 '지름'으로 해서 운동의 필연성을 만들기도 한다. '완주'라는 하나의 목표의식은 나를 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자의든 타의든 꾸준한 연습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해 수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섞으며 달리는 동안 살아있다는, 하나의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에 매료된다. 물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골인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씩 내 딛는 것이다.

수영(1.5km) 준비중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 여파로 연기되었던 경주 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오늘(9/6) 열렸다. 올 초에 대회 완주를 목표로 삼고 덥석 신청한 후로 연습을 한다고는 했지만 수영(1.5km)과 사이클(40km), 달리기(10km)를 함께하는 3종경기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경기전까지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왔지만 계속해서 요의를 느꼈으니 말이다.

  ​개회와 엘리트선수 출발, 그리고 동호인들이 출발하고 한 참을 기다린 후에나 '새내기'가 출발할 수 있었다. 보문호 750m를 2회전하는 수영은 나이순으로 동호인을 모아 출발시켰는데 첫 출전자들은 후미에 따로 그룹을 만들어 출발했다. ​그래서 수영에서의 초반 몸싸움이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대회는 처음이라지만 힘만은 초보가 아니었다. 출발과 동시에 앞사람의 팔꿈치에 얼굴을 한대 맞았는데 수경이 벗겨지면서 코와 입으로 한웅큼의 물을 들이마셨다. 보온과 안전을 위해 착용한 슈트 때문에 안그래도 온몸이 조여있는데 보문호의 밍밍한 물이 기도에 걸리니 기침은 사정없이 나오고 숨은 턱턱 막혔다.

  ​답답하던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정신을 차려보니 후미와 벌써 10여 미터는 벌어진 상황. 저 멀리 보이는 노란 부표를 향해 한 팔씩 회전하기 시작한다. 연록색은 보문호 물속은 1m 앞도 구분하기 힘든 정도로 시야가 좋지 않아 두세번의 물질마다 고개를 들어 전망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한 바뀌는 정신없이 수영을 했다면 두 번째 바뀌는 앞사람과 옆사람을 살피며 조금은 여유롭게 수영할 수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자 한동안은 배 위에 있는 것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지만 사이클로 갈아타기 위한 바꿈터에 도착할 때쯤에는 많이 진정되었다. 대회전부터 수영에서 싸이클로 바꿔 탈 때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되뇌어왔지만 막상 바꿈터의 자전거 앞에 서니, 전신을 조으고 있는 슈트를 벗으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슈트를 바구니에 담고, 헬멧을 쓰고... 그담엔 뭐였더라? 아 파워젤을 하나 먹고, 양말과 신발을 신고..."

  ​수영할 때는 몰랐는데 사이클 위에 오르자 비가 제법 온다는 것을 알았다. 보문호를 자전거로 네 바퀴 도는 코스로, 미끄러운 빗길 때문에 조심해서 출발했다. 수영 경기가 열린 수상공연장을 빠져나와 좌우에 도열한 관광리조트들을 지나 시원하게 보문로를 달려간다. 현대호텔, 한국콘도, 일성콘도, 대명리조트, 콩코드호텔, 코모도호텔, 힐튼호텔... "참 많이들 모여 살구나. ^^ "

  ​경주월드에서 우회전해서 경감로를 타고 보문교 삼거리까지는 도로에 요철이 많아 신경이 많이 쓰였다. 비도 오는데다 싸이클 훈련이 부족한 탓에 자칫 한눈을 팔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보문로 오르막을 만난다. 차로 이동할 때는 대수롭지 않은 경사였지만 자전거로 오르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기어를 바꿔가며 페달을 밟아봤지만 추월해가는 동호인들을 따라갈 순 없었다. 그들의 지칠 줄 모르고 움직이는 거무스름한 허벅지와 탱탱한 장딴지를 바라보며 힘을 내어보지만 부족한 내 훈련 량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저 자족하며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 오르는 수밖에...

자전거(40km)    달리기(10km)


  ​보문호를 네 바퀴(38km) 도는데 1시간 28분이 걸렸다. 이제 마지막 관문 달리기. 자전거를 바꿈터에 내려놓고 달리기 코스로 달려간다. 달려가지만 실상은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리를 움직여봐도 자전거로 인해 피곤해진 다리가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허벅지 바깥쪽과 아래쪽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한다. 5km 코스를 두 바퀴나 돌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중간에 쥐라도 나는 건 아닌지... 그나마 계속되는 빗줄기가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 보통의 날씨였다면 땀으로 범벅이 되었겠지만 오늘은 그래도 시원한 비라도 뿌리니 다행이다. 삐걱거리는 두 다리의 부하를 깨끗이 씻어주면 좋으련만.

  ​저기 첫 번째 반환점이 보이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걷는 사람도 늘어난다. 여기서 걷기 시작하면 다시 뛰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빠른 속도는 아니라도 짧고 낮은 보폭으로 남은 거리를 채워야한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 경기에 참가한 것도, 어떤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조금씩 참으며 완성해가는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계속해서 발길을 내딛는다.

  ​5km를 돌아 다시 두 번째 반환점으로 향한다. 경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주로에 사람들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보문호는 회색 안개에 쌓여있다. 문득 꿈속에 들어온 것 같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두 다리에 올라탄 나는 비오는 보문호를 유람하고 있다. 물기둥을 힘차게 쏘아 올리는 분수 옆으로 많은 관광객을 실어 날랐을 오리배가 호수 중간에 외롭게 정박해 있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는 음악처럼 들려온다. 뱀의 비늘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보도블럭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골인 지점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모아  정지된 시간 속으로 달려간다. 어제부터 동행해 나를 뒷바라지 해준 아내가 파이팅을 외치며 따라온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은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이어서 하는 종목이라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어린시절 운동회 날의 장애물경기처럼 아기자기했다. 수영이 힘들어질 쯤 자전거에 올라야하고, 자전거가 버거워질 때 쯤 달리기를 시작해야하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종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나의 몸을 지켜보는 것부터 슈트를 벗고, 운동화를 갈아신는 바꿈터의 움직임까지 나를 발견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다. 한바탕 신나는 놀이를 마친 지금, 다시 팔다리기 근질거려오기 시작한다.

  "다음 대회는 언제지?" 


트라이애슬론 완주    나는야 철인!(3시간17분) 

 


- 2015/09/09
  2015 경주 트라이애슬론 대회(2015/09/06)에서 3시간 17분으로 첫 트라이애슬론(올림픽코스)을 완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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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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