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강산무진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문학동네 (2006/04/17)
읽은날 : 2009/12/09


강산무진  배웅


 정체된 도심에 갇혀버린 한 중년의 일상. 택시 운전을 하는 김장수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그가 옛날 식품사업을 할 때 함께 고생했던 경리직원인 윤애였다. 물론 단순한 직장동료였다면 '소설꺼리'로 까지는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은 사랑이라고도, 불륜이나 치정이라고도, 심지어 욕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뭐랄까, 물이 흐르듯이, 날이 저물면 어두워지듯, 해가 뜨면 밝아지듯이 그렇게 되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찾아온 작은 여운이었지만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다시 현실 앞에, 꽉 막힌 현실 앞에 선다.


 화장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돌보며 회사 내 젊은 여인을 훔쳐본다. 검버섯이 돋아난 아내의 앙상한 살가죽과는 달리 하얀 목덜미와 핑크빛 속살의 그녀는 더욱 도드라졌다. 그녀의 모습, 숨결, 몸짓, 이 모든 것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추은주, 그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죽었고 전립선염으로 인한 오줌보는 더없이 팽팽해져 왔다. 회사는 '내면여행'과 '가벼움'이라는 두 콘셉을 오가며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화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된다. 삶과 죽음, 외면과 내면, 무거움과 가벼움이 뇌종양으로 죽은 아내의 장례를 통해 주인공의 삶 위로 부상한다.


 항로표지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는 섬 주변을 자나는 배들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정작 소라도로 들어오는 배를 인도한 적은 거의 없다. 그저 다른 이의 앞길을 가리켜주는 묵묵한 조력자일 뿐이다.
 소라도 등대를 관리하는 동대장 김철은 아내의 출산과 함께 보다 생활여건이 좋은 내륙으로 떠나려한다. 한편 도산한 대기업 경영진 출신의 송곤수는 등대 관리라는 새로운 일거리를 맡아 소라도를 찾는다. 이들은 등대라는 이정표를 중심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선다.


 고향의 그림자


 대영호를 타고 바다로 도피한 택시강도 조동수를 체포하기 위해 P항으로 내려왔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신 곳이기도 했다. 동향이라는 이유로 내려왔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다. 대소변은 물론이고 자식 얼굴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는 과거에 낙태한 사산아에게 매달려있었고, 떠올리기도 싫은 판자촌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조동수가 P항으로 돌아오는 날 그를 체포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긁어버린" 그녀석이 생각나서일까...
 누구에게는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이 되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기억과 현실의 오버랩 사이이의 방황한다.


 언니의 폐경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언니에게 갑작스레 폐경이 찾아온다. 더욱 말이 없어지는 언니는 남편 장례비와 보상금의 대부분을 자식과 시댁에게 빼앗기다시피 넘겨줘버렸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돈마저 이혼 수속 중이던 나에게 쏟아 부었다. 폐경기에 접어든 언니는 지는 노을처럼 점점 안으로 움츠려들었다. 나는 딸아이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이혼절차를 따라가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전남편의 입사동기였던 '그이'가 옆에 있었다.
 가족사의 불행과 함께 닥친 폐정은 극복하기 힘든 고갯길처럼 힘겹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라운드를 맞이하는, 인생의 후반전을 알리는 신호소리가 아닐까. 폐경으로 황량해진 자궁이 손자의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머나먼 俗世(속세)


 'NIRVANA'라는 문구가 대각선으로 들어간 사각의 링에 나는 서있다. 라이트 웰터급 챔피언 김득수와 타이틀매치를 벌이고 있다. 잽, 잽, 어퍼, 어퍼, 미끄럽게 번득이는 땀 냄새 속에서 풍도 해망사의 일이 눈앞에 펼쳐진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을 키워 온 난각스님을 찾아온 장일식은 사회혁명을 꿈꾸는 지명수배자였다. 난각스님은 병약한 그에게 잠자리와 약을 내어줬지만 난 그를 경찰에 신고해 버렸다. 과거의 기억은 폐허로 번했을 해망사와 함께 NIRVANA 위에 묻혀 버렸다.
 권투라는 비정한 현실과 절이라는 이상적 공간의 대비가 극명한, 그래서 지극히 김훈스러운, 그래서 조금은 평이한 글이지 싶다. 하지만 단순한 문체와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전형적인 구성은 내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킨다. 한 문장씩 찬찬히 필사하면서 글쓰기를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지 싶다.


 강산무진


 간암 진단을 받은 김창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무로 재직 중이던 의류업체에 명예퇴직 신청을 한다거나 장롱 속에 넣어둔 철지난 옷, 은행에 맡겨두었던 통장이나 주식을 정리하는 것 외엔 특별히 없었다. "의사가 말했듯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산책"이 주요 일거리로 등장한 그는 산책 중에 우연히 들른 박물관에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게 된다.
 "팔 미터가 넘는 긴 가로 화폭을 따라서 강산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으로 본 강산과 꿈에 본 강산, 꿈에도 보지 못한 강산들이 포개지고 잇닿으면서 출렁거렸다. (중략) 윤곽선을 풀어헤친 산맥은 연기처럼 엉키고 또 흩어지면서 허공 속으로 흘러갔고, 기진해서 소멸해가는 산맥들이 하늘 속으로 빨려드는 잔영 너머에서 바다는 시작되고 있었다."
 인생의 막바지를 준비해야하는 중년의 허허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십 수 년을 세상과 씨름했건만 손에 남은 것은 <강산무진도>의 허공과 잔영뿐이다.


 7편의 단편을 모은 김훈의 소설집으로 사건을 중심에 놓고 그 언저리를 적절하게 꾸려나가는 모습이나 반어법과 역설이 적절히 조화된 ‘김훈’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


 으... "우두둑"(머리털 뽑는 소리!)


 뭔가를 적기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지만 소설의 끝자락을 잡아끄는 몽롱함 존재할 뿐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는다.
 단편집을 읽고 나면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진득한 글쓰기에 대한 나의 한계인데, 장편에 비해 명확한 사건 구성이나 심도 깊은 인물 묘사가 생략되어 있는데다 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독후감이랍시고 적는 글들이 대부분 줄거리 중심으로 흘러가곤 한다. 이번 글도 마찬가지로 줄거리 요약 정도에서 마무리될 것 같다. 뭔가를 더 적고 싶으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환영을 글로 표현할 재주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나의 표현력이 좀 더 키워진 다음을 기약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분류 :
산문
조회 수 :
3908
등록일 :
2011.05.09
22:27:40 (*.182.220.169)
엮인글 :
http://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1711&act=trackback&key=4db
게시글 주소 :
http://freeismnet.cafe24.com/xe/171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sort 날짜 최근 수정일
67 산문 인생 - 김용택 freeism 3629   2011-04-25 2011-04-25 10:11
인생 지은이 : 김용택 출판사 : 이레 (2000/12/20) 읽은날 : 2001/06/19 잔잔하고 수줍은 듯 내게 다가오는 용택이 아저씨의 글, '인생'... 이전의 산문들이 이웃과 사람 중심이라면 여기서는 작가 자신 속에서 투영된 주변의...  
66 산문 외뿔 - 이외수 freeism 3507   2011-04-27 2011-04-27 00:29
외뿔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1/04/18) 읽은날 : 2001/07/11 외수 형님께... 안녕하십니까 외수 형님. 이게 얼마만 입니까? 그 동안 몸은 건강하셨는지... 간간이 형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파지'속을 헤엄치고 ...  
65 산문 무소유 - 법정 freeism 3674   2011-04-27 2011-04-27 00:33
무소유 지은이 : 법정 출판사 : 범우사 (1976/04/15) 읽은날 : 2001/08/30 우리는 슬퍼해야 합니다. 이런 엿같은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은 욕...  
64 산문 지리산 편지 - 정도상 freeism 3610   2011-04-27 2011-04-27 00:35
지리산 편지 지은이 : 정도상 출판사 : 미래 M&B (2001/08/06) 읽은날 : 2001/10/10 지리산... 얼마나 반가운 이름인가... 비록 태어나지는 않았으되 묻힐 때는 그 뼛가루라도 뿌려두고 싶은 산, 내 마음 속 고향집 같은 산...  
63 산문 물소리 바람소리 - 법정 freeism 3869   2011-04-27 2011-04-27 00:43
물소리 바람소리 지은이 : 법정 출판사 : 샘터 (1986/10/15) 읽은날 : 2002/01/26 "요즘 부쩍 이 지구의 여기저기에 잇따라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  
62 산문 예술가로 산다는 것 - 박영택 freeism 3682   2011-04-27 2011-04-27 23:44
예술가로 산다는 것 지은이 : 박영택, 김홍희(사진) 출판사 : 마음산책 (2001/10/05) 읽은날 : 2002/02/15 예술... 술 중에서는 가장 독한 술이다.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숙명처럼 마셔야 하는 술이다. 모든 예술 작품...  
61 산문 사람 - 안도현 freeism 3712   2011-04-27 2011-04-27 23:46
사람 지은이 : 안도현 출판사 : 이레 (2002/01/05) 읽은날 : 2002/02/20 사소함,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그 '가벼운' 것들의 따뜻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동네친구를 만났을 때의 기쁨처럼, 할머니에게서 듣던 동화 속의 ...  
60 산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 freeism 4717   2011-04-27 2011-04-27 23:51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지은이 : 최순우 출판사 : 학고재 (1994/06/15) 읽은날 : 2002/05/1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님의 "꽃"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향기...  
59 산문 아름다움도 자란다 - 고도원 freeism 3331   2011-04-27 2011-04-27 23:53
아름다움도 자란다 엮은이 : 고도원 출판사 : 청아출판사 (2002/03/07) 읽은날 : 2002/05/31 고도원님이 읽은 책들 중에서 좋은 글들만을 모아놓은 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잠언집, 명상집이라 보면 될 듯싶다. 내가 한때...  
58 산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 - 미치 앨봄 (Mitch Albom) freeism 3616   2011-04-28 2011-04-28 12:04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 지은이 : 미치 앨봄 (Mitch Albom) 옮긴이 : 공경희 출판사 : 세종서적 (1998/06/10, 7200원) 읽은날 : 2002/07/09 왠지 모르게 교화적인 분위기일거라는 생각에 책을 앞에 놓고 ...  
57 산문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 장정일 외 freeism 3582   2011-04-28 2011-04-28 12:06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지은이 : 장정일 외 출판사 : 행복한책읽기 (2001/11/23) 읽은날 : 2002/07/15 장정일. 아니나다를까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거짓말 사건'이다. 그 사건이 한창 불거져 나올 무렵 책방에서 일하던 한 친...  
56 산문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 도종환 freeism 3694   2011-04-28 2011-04-28 12:12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지은이 : 도종환 출판사 : 사계절출판사 (2000/11/20) 읽은날 : 2002/10/15 오늘은 '이종환의 디스크 쇼'가 아닌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듣는다. '이종환'이라는 DJ와 동명이라는 것 때문인...  
55 산문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 진시륜 freeism 3476   2011-04-28 2011-04-28 12:16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지은이 : 전시륜 출판사 : 명상 (2000/10/12) 읽은날 : 2002/11/07 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그것만큼 진솔한 얘기가 또 있을까. 화려한 겉모습은 아닐지라도, 미흡한 ...  
54 산문 학교종이 땡땡땡 - 김혜련 freeism 4638   2011-04-28 2011-04-28 12:58
학교종이 땡땡땡 지은이 : 김혜련 출판사 : 미래 M&B (1999/10/20) 읽은날 : 2002/12/20 "시팔, 졸라 재수 없어" 스치는 듯 지나가는 한 학생의 말을 들었을 때, 한없는 무력감으로 스스로 초라해진다.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53 산문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이외수 freeism 3582   2011-04-28 2011-04-28 13:00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3/07/01) 읽은날 : 2003/11/19 올 초부터 지루하게 읽어오던 박경리님의 토지(土地), 그 무게에 눌려 다른 책을 볼 엄두를 못 내다 잠깐 짬을 내어 인근 '...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