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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검은 꽃


지은이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2003/08/20)
읽은날 : 2004/12/19


검은 꽃 강렬하고도 난감했던(?)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통해 알게 된 ‘김영하’님이 최근 주요 문학상(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싹쓸이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의 단편을 인상 깊게 읽기도 했지만 “감각적인 글이 돋보이는 신세대 작가” 정도로 얕잡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간은 쇼프로를 도배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지게 되는 고만고만한 반짝 가수처럼 곧 그 유행이 시들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젊고 색다르다고 해서 깊이가 없고, 그래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빠가 돌아왔다>나 <검은 꽃>을 통해 왕성하고 야무진 ‘그만의’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를 만나러 간다. 감각을 넘어선 깊이를 찾아 <검은 꽃>으로 달려간다.


이야기는 한 젊은이(이정)가 총에 맞아 죽으면서 시작된다. 멀리 이국땅의 늪에 처박힌 체 꺼져가는 의식이지만 오히려 지난날의 일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1905년 고향을 등진 1033명의 한인들은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멕시코로 떠난다. 몰락한 양반, 전직 군인, 농민, 도시 부랑자, 파계 신부, 박수무당, 내시 등 다양한 신분의 이민자들이었지만 아픔과 절망에 대한 마지막 선택이라는 점에선 모두가 같았다.
하지만 어렵게 도착한 멕시코는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민자가 아니라 채무 노예로써 팔려왔던 것이다. 달콤한 감언이설에 속은 자신을 한탄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찌는 듯한 열기와 고된 노동, 턱없이 낮은 대가는 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당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풍전등화의 조선 운명처럼 위태로운 삶이었다.
그렇게 수년간의 농장생활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멕시코 거리를 전전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일부는 멕시코 내전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남의나라 전쟁인지라 어디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우리의 우울한 이민사지만 간결하고 긴박하게 써내려간 김영하님의 글빨에 유쾌한 축제를 대하듯 몰입하게 된다. 거기다 짧게 구성된 단락은 여려 주인공들의 ‘주목받지 못한 삶’을 한 컷, 한 컷의 슬라이드처럼 비춰준다.
편안하게 앉아, 거친 숨소리를 느끼며, 슬픈 이민사를 들여다본다.


또한 소설에서 다룬 역사, 국가, 전쟁, 전통, 사랑, 인권, 종교 등 다양한 내용 중에 특히 종교에 대한 역설인 기억에 남는다.
가톨릭을 맹신하는 멕시코의 지주(이그나시오)는 한인들의 굿판을 우상숭배로 곡해하고는 무당을 잡아 잔혹한 매질을 가한다. 그리고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며 짓이겨진 벌레 대하듯 한인들에게 중얼거린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박광수(전직 신부)는 그런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지만 권력의 힘 앞에선 역부족이다. 얻어맞던 박광수는 광기에 휩싸인 지주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지만 그들의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서글프다.
탈출구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각양각색의 인간군상과 이들의 고통을 보듬어 주지 못했던 나약한 국가, 그래서 저 멀리 이국땅으로 내몰린 백성들... 그들이 이유도 모른 체 당해야했던 매질과 목적 없이 참여했던 전쟁처럼 사회와 인간에게 가해지게 되는 ‘폭력’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히 살아남았다. 멀리 이국땅에서 정착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오늘의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땀과 눈물의 응어리로 일군 <검은 꽃>을...

분류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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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5
등록일 :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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