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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3/07/01)
읽은날 : 2003/11/19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올 초부터 지루하게 읽어오던 박경리님의 토지(土地), 그 무게에 눌려 다른 책을 볼 엄두를 못 내다 잠깐 짬을 내어 인근 '주막'에 들른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서둘러 구입해 놓고 책장에 모셔둔, 먼지하나 앉을까 살포시 포개어 놓은 노란 보물 상자를 꺼내든다.
얄팍한 상술인진 모르지만 책을 뒤덮은 노란색 표지가 벌써부터 설레게 한다. 이번에는 어떤 작당을 꾸밀까! 무슨 기똥찬 입담을 풀어놓을까 하는 생각에 잔뜩 기대감에 젖는다. 그래서인지 책 자체의 가치를 떠나 ‘이외수’라는 캐릭터가 갖는 돌발적인 신선함이 날 즐겁게 한다.


첫날 밤, 신부의 ‘노란’ 옷고름을 푸는 새신랑의 긴장된 손짓으로 표지를 펼친다. 그리곤 엷은 바람에라도 꺼질까 작은 불씨를 가슴에 안고 가는 새댁의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책장을 넘긴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외수스럽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유려한 문체와 의미 깊은 단어, 그리고 간결한 듯 보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림들, 그리고 향신료처럼 첨가된 약간의 위트 섞인 ‘막말’들이 이외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흘러간다.
정말이지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외수 형님만의 그 감수성에 혀를 내두른다. 일상에서 스치는 잡다한 현상들을 서투르게 흘려보내지 않고 정성스레 다듬고 어루만져 어린왕자의 ‘장미’로 만들어 놓는다. 나를 포함한 범인들은 정작 주어진 장미조차 가꾸지 못하는데 말이다.
자신에게 간직된 것들이 한 줄의 글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로 재생되는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문학도들의 꿈은 아닐는지... 얼음이라도 태워버릴 듯한 노력으로 자신과 주변의 가치를 다듬어온 ‘인생 선배’로서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애정만큼 아쉬움도 늘어가는 게 사실이다.
한때, ‘외수’라는 외곬에 빠져 즐겁게 허우적거리며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를 넘어 ‘원래 그러했듯’ 나의 한 분신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요즘엔 그때의 신선함이나 격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심취했던 ‘도’도 율도국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향으로 치부한지 오래고, 나 역시 돈에 목숨 거는 속물이란 걸 이미 알아버렸기에 더 이상의 외수적 분위기에 몰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선지 ‘외수’ 하면 떠오르는 이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조금은 변신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또한 작가로서의 문학적 산통을 너무 강조하는 듯 하다.
‘나는 소위 글로서 빌어먹은 작가이며, 글쓰기만큼은 내 뼈를 깎는 인고의 산물이다. 수많은 파지 속을 죽을 똥, 살 똥 헤엄친 다음에야 하나의 문장이 나온다. 니들이 알기나 해? 이 쓰라린 작가로서의 고통을!’이라 외친다.
하지만 너무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이렇게 고통(좋은 글에 대한)에 대한 자신감(?)이 강조되다 보니 옛날 외수님으로부터 느꼈던 어수룩한 친근감은 덜하다. 푸석푸석한 머리를 긁으며 던지는 소탈한 미소를 찾기 힘들다. 내 표현이 짧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외수식으로 표현하자면 ‘형이상학적 결벽증’에라도 갇혀있는 듯한 모습이랄까...


이런 맥락에서인지 평론에 대한 부분 역시 ‘영혼의 발육부진에 빠진 선무당의 치명적 결함’이라 폄하한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는데 니들은 뭐냐! 내 글을 가지고 이렇쿵 저렇쿵 난도질 할 궁리밖에 더 하느냐! 에라-이 기생충 같은 잡놈들아!’ 라 외치는 듯 하다. 마치 평론에 대해 단호한 철갑을 두르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비주류에서 시작해 이정도 위치에 오기까지의 정신적 시달림은 이해가 되지만 조금은 싸잡아서 매도하는 듯한 인상이 깊다. 어느 정도 포용적인 너그러움이 필요한 건 아닐까. 평론가나 이런 잡글(?)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므로...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하지만, 이런 작가적 ‘깡’ 때문에 오늘날의 이외수가 있었으며 이를 기다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부분만큼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춘천시 교동의 격외선당(格外仙堂:이외수님 댁의 사랑방)은 언젠가 들러봐야 할 무슨 성지와도 같은 존재니 말이다.


노란 옷고름을 풀어 그 속살을 훔쳐보듯 조심스레 책을 들춰본 지금, 이 속에 담겨있는 그림 소품들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
글과 짝을 이뤄 잘 어울리면서 심플한 듯, 무심한 듯, 투명하게 휘갈긴 그림들이 여러 줄의 맛난 글보다 더 ‘외수스럽게’ 보인다. 그만큼 이 책에서 차지하는 그림의 비중이 크다.
문득 ‘이 그림 한 장 같고 싶다’라는 소유욕이 고개를 쳐든다.


외수 형님! 이 잡문 귀엽게 봐주시고, 그림하나만 주십쇼~ 예?

분류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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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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