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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허수아비춤

지은이 : 조정래
출판사 : 문학의문학 (2010/10/01)
읽은날 : 2011/02/08


허수아비춤  "화염병을 앞세우고 가투에 몸 던졌던 그때 군부독재를 물리치는 '정치민주화'만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고루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경제민주화'도 함께 꿈꾸었다. 노동자들의 열성적인 노동에 힘입어 기업들이 성장하고, 기업들은 양심적으로 투명경영을 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서 복지 제도와 함께 분배가 잘 이루어져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p250)
 하지만 그런 세상은 요원하기만 했다. 기업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수 천, 수 조원의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는 판사와 검사, 국회의원, 공무원, 신문기자에게 들어가 기업의 각종 특혜를 도와주었다. 뇌물의 순환 고리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 몸집을 키워가며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었다.
 "그 탈세한 검은 돈을 이 나라의 모든 권력 기관에다 뿌렸다. 정치인, 법조인, 정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언론인, 학자들까지도 그 돈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재벌을 감시 감독해야 하는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융감독기관도 모두 그 돈을 달게 먹었다. 이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가의 모든 권력이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p324)


 <허수아비춤>서 보여지는 기업의 횡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어 보였다. '억'이니 '조'니 하는 돈이 수시로 왔다 가는데다,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공직자들까지도 그들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에서 일어난 뉴스 조각들을 맞춰본다면 <허수아비춤>의 '터무니없는' 그림과 너무도 닮아 있음에 놀라게 된다. 아닐 꺼야, 그렇지는 않겠지 하며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사회의 모순들을 한꺼번에 직면해 버렸다.
 그들은 수익성 좋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서 그곳에 거주하는 영세민들부터 몰아내야했다. 하지만 제시한 보상비로는 다른 곳에 집을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협상은 진전이 없었고 철거 시한은 점점 다가왔다. 생활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은 임시 막사를 지어 강제철거에 맞섰다. 하지만 공권력까지 동원한 건설사에 맞서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가까웠다...
 지역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현실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다 보니 소설 속의 모습의 이야기도 현실적인 모습으로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몇 해 전에 김용철 변호사에 의해 불거진 '삼성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삼성이 관리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비자금과 삼성 가(家)의 각종 의혹에 대해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건의 흐름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유사했다. 아마도 조정래 작가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특히 경제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공생관계를 파헤쳐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조정래 작가는 그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시민단체에서 찾고자 했다.
 "수수 많은 눈들로 정치권을 감시하고, 경제권을 감독하고, 법조계와 공직 사회와 언론계를 눈 부릅뜨고 지켜야만 비로소 전 사회는 맑고 깨끗해져 선진국의 문이 열리게 된다. 시민단체들의 활성화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유일한 길이요, 희망이다." (p376)
 이는 자본주의에 단맛에 길들여진 국민 각자의 각성이 전재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리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더욱 잘살기를 바라고, 그래서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관대한 법적 조처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나 저항감 없이 그저 묵묵히 묵인하고 침묵하며 넘어가는 것입니다. (중략) 인간의 마음에서 재물욕이 생생히 살아 있는 한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세력에게 충성스럽게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p416)
 그들의 음흉한 독백처럼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의 생각 없는 허수아비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돈의 척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던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니 앞길이 멀게만 보인다. 국민들의 깨어있는 비판정신과 시민단체의 응집된 힘만이 우리사회를 좀 더 건전하게 만들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시민단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사회적으로 인정된, 교과서에서 봐왔던 기억을 더듬는 수준이었지 그다지 절실하게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일종의 보호심리는 아니었을까. 남들보다 안적적인 가정에서 자라 무리 없이 대학과 직장, 거기다 사회적 지위까지 얻은 지금의 모습을 생각해보더라도 평균 이상의, 상당한 해택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기득권의 수해를 톡톡히 받아온 나에게는 사회비판적인 이런 글들, 특히 기득권층을 강하게 부정하는 글을 어느 정도는 불안정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무신경하게 걸어온 삶들이 몇몇 사람들에게는 '권력 세습'이라는 무서운 말로 다가왔을 수도 있었겠다.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의 생활을 한순간에 바꿀 수야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을 남겨둔 지금, 미묘하고 복잡한 심정이 스쳐간다...


 <허수아비춤>은 최근에 읽은 황석영 님의 <강남몽>의 경제 발전을 다룬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성장이라는 매개를 통해 일어나는 각종 사건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니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부도덕성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던 것에 비해 소설로서는 조금 밋밋했지 싶다. 신문이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간간히 폭로되는 '그들만의 리그'를 연속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태백산맥이나 여타 소설에서 보여줬던 인물이나 사건의 깊이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바람이 불자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 여기 저기 누더기로 기워 입은 옷이 어색하고 요란하기만 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성장 앞에 '주책없이' 흔들리는 서글픈 허수아비가 아니었을까...

분류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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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8
등록일 :
20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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