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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낯익은 세상 


지은이 : 황석영
출판사 : 문학동네 (2010/05/19)
읽은날 : 2011/10/11


낯익은 세상  

  "도시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들을 미처 먹어치우지 못하고 묵히다가, 또는 너무 많이 먹다먹다 질려서 버려대고 있었다. 비닐 속에서 녹아 미끈거리는 얼렸던 밥덩이며, 물주머니 같은 비닐에 가득한 굴이며, 말라비틀어진 생선이며, 녹지 않은 고깃덩이들, 겉잎사귀만 벗겨내면 아직도 싱싱한 노란 양배추, 새벽 수산시장에서 버려진 엄청난 내장들과 생선의 대가리 꼬리 또는 팔다 남은 멀쩡한 것들, 그야말로 이런 때 며칠은 꽃섬 사람에게 밤마다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p94)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며 생활하는 꽃섬 사람들. 추석 명절이 지나자 잔칫날 같은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다. 얼마 전에 엄마와 함께 이사온 딱부리도 이곳 생활에 적응해 추석의 '버려진 해택'을 맘껏 누렸다.
  그날 밤, 딱부리와 땜통(딱부리의 이복동생)은 메밀묵을 먹고 싶다는 김서방네 아이를 만난다. 사실 김서방네 가족은 오래전 여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혼백들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딱부리와 땜통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빼빼엄마와 함께 묵과 막걸리를 이들에게 대접한다.
  그에 대한 대가였는지 김서방네 아이는 땜통에게 금붙이와 돈뭉치가 묻혀있는 곳을 알려준다. 큰돈을 손에 쥐게 된 딱부리와 땜통. 도심을 배회하며 물질문명에 취해보는 것도 잠시, 이들의 행복은 검붉게 타오르는 화마와 함께 산산 조각나 버린다...
 
  황석영이 말하는 세상은 새 것이 헌 것으로 바뀌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순환의 과정이다. 오늘의 슬픔이나 내일의 즐거움 역시 서로의 인과관계를 따라 돌고 도는 것. 결국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머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p228)


  낯익은 세상은 낯선 세상에 대한 설익은 농담처럼 모순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낯익은' 것에 대한 반감, 혹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속내를 들켜버린 것 같은 무안함이랄까. 미처 우리가 담아내지 못했던 근현대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며 공감하는 정도에서 그칠 뿐 더 이상의 감정이입은 되지 않는다. 오래된 정원에서도 그랬듯이 여기서도 오래전에 죽은 혼령이 등장한다. 아마 그 때문인지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유식하게 말하면 '리얼리티'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반복되는 일상에 치어 살다보니 나 역시도 현실의 노예가 되어버린 걸까. 소설을 대할 때도 그 속의 감성을 잡으려하기 보다는 이성적인, 논리적인 구성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머리를 식혀야할 때가 온 것일까?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읽으면 좀 괜찮아질까. 낯익은 소설을 통해 낯선 나를 깨닫게 된다...

 

분류 :
한국
조회 수 :
4438
등록일 :
2011.10.12
11:03:29 (*.43.5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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