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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사과는 잘해요


지은이 : 이기호
출판사 : 현대문학 (2009/11/12)
읽은날 : 2010/01/21


사과는 잘해요  시봉과 나, 우리는 한마디로 사과에 목숨 거는 놈들이다.
 복지시설에서 만난 우리들은 별 이유도 없이 복지사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한 가지씩 이유를 찾아 사과를 하자 그 폭력도 싫지만은 않았다. 사과할 건더기가 없을 때는 일단 사과부터 한 뒤 그 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매일매일 이어지는 폭행 속에서 사과의 기술(?)을 익혔고, ‘내부고발’로 복지시설에서 나왔을 때에는 이런 특기를 살려 사과대행업도 시작했다.
 오랜 잠복과 끈기 있는 추적으로 의뢰인을 찾기도 하고 제 발로 찾아오는 의뢰인의 사과를 대신해 주기도 했다. 물론 의뢰인의 죄가 사과의 정도와 대가에 합당하지 않으면 새로운 죄를 찾아서라도 기어이 사과의 레벨에 맞춰놓았다.


 얼핏 보면 정신병원을 뛰쳐나온 미치광이의 웃지 못 할 퍼포먼스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사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풍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거나 예상 밖의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시작이 모호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이해와 양보로 원만하게 처리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져 친인척간이나 오랜 지기가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물론 금전적 합의나 법적 절차를 통해 시시비비와 잘잘못의 비중을 가려 대처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개개인의 상처와 고통은 오랜 시간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는 이해 당사자들의 사과와 용서를 통해 서로간의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미덕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사과를 통해 죄를 용서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통해 사건(죄)을 재해석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사과를 빌미로 모든 부정적인 요인을 몰아붙여 마녀사냥 식으로 단죄해버린다. 당신이 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거나 넌 뭘 해도 안 된다는 식의,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결과를 보고 원인을 유추해버린다.
 또한 사과를 그 자체로 표현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꿍꿍이를 위한 연막으로 사용하고 해석하려는 것이다.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도 갖는 생각인데 사과나 발표, 그럴싸한 성명들이 잘 짜인 각본에 의해 처리되는 사무적 절차처럼 보일 때가 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처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적당한 눈치작전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오늘날의 사과가 사과 자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쇼맨십 같은 가식으로 비쳐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술자리에서의 농담 한마디가 내란음모죄로 되돌아왔던 군사독재 시절도 있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가 권력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하고 와전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봐왔다. 죄를 지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사과를 통해 죄를 키워나가도록 뒤바뀐 것처럼 사과를 집단의 이익을 위한 말장난이나 뒤집어씌우기 식의 함정으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 직장과 같은 권력집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복종을 요구해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체 권력의 힘에 복종해야 했고 그들의 명령에 굴복해야 했다. 심지어는 없던 죄까지 만들어 자백해야 했다. 그야말로 죄 권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복지시설과 원장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권력 앞에, 사과하며 굽실거리던 시봉과 나의 모습은 절대 권력의 사슬을 벗어던진 지금에도 계속되는 것 같다. 복지시설에서 적당한 죄목도 없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사과가 그곳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습관적으로 이뤄지는 맹목적인 사과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민주’와 ‘합리’라는 가면을 쓴 권력 앞에 갇혀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보 혹은 미친놈으로 비춰진 시봉과 나는 사과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꼬집었다. 정말이지 오늘날의 ‘사과’는 진실성이 사라져버린 허접한 말 껍데기로 변질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간결하게 넘어가는 빠른 전개 속에 살갗을 후벼 파는 아픔이 전해진다.
 “당신들은 나한테 사과할 일 없어?”


  and, 독서토론회


 우리의 죄를 대신한 예수와 그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우리. 삶 자체가 죄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쩌면 원초적 죄의식을 앉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는 작가 이기호님.
 어제 부산 Y도서에서 주최하는 <사과는 잘해요> 독서토론회에 다녀왔다. 작가의 진한 눈썹과 검은 뿔테 안경은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켰고 길게 누운 S자형의 웨이브 머리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다. 단정하게 여민 하얀 티셔츠와 어우러져 다소 여성적이고 철학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 역시 느릿느릿 차분하게 흘러갔다. 수줍은 듯 보이는 웃음으로 시작해 섬세하게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에 이르러서는 강한 어조로 악센트를 줬다.


 <사과는 잘해요>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예수와 성서에서 죄에 대한 모티브를 얻었다는 말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거짓말과 사과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이나 지배계급의 억압과 일반 소시민의 순종에 대해 이야기로 봤던 나와는 달리 작가와 패널들은 예수와 성서, 인간의 원죄와 부조리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놓쳐버렸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되새김의 과정을 즐기기 위해 독서토론회에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과 설명에 약간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의 묘미, 그러니까 다양한 유추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의 다양한 감상과 평가를 옹호했다. 거기다 나와 비슷하게 읽은 독자의 질문을 통해서도 내가 완전히 헛집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맥락으로 작가는 소설이나 기타 매체로 발표되는 “작가의 말”을 경계한다고도 했다. 작가, 특히 소설가는 소설로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글에 대한 약간의 여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야지 그것을 소설가가 직접 개입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았고 그 속에는 웃음과 여유가 가득했다. 그리고 글과 소설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가 좋아보였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느껴진다.
 토론회 말미에 직접 글을 쓰라는, 소설을 쓰라는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밀려온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면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분류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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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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