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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지은이 : 김비, 박조건형
출판사 : 한계례출판(2020/07/16)
읽은날 : 2020/08/17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이나 국내외의 여행, 혹은 소소한 일상을 적거나, 서툴게 그린 그림을 네이버블로그(blog.naver.com/sanmani)에 올리면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올려놓은 블로그를 통해 어제는 어떻게 보냈고, 오늘 읽은 책은 무엇인지, 내일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 기껏해야 하트 모양의 ‘좋아요’나 이웃 신청, 댓글 몇 줄 남기는 것이 소통의 전부였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과 관심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묘한 연대감으로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박조건형 님도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먼저 알고 있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산업현장에서 짬짬이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는데, 투박하지만 노동의 끈끈함이 묻어있는 진솔한 그림들이 인상 깊었고, 힘겹고 무력한 삶을 어떻게서든 헤쳐나가려는 그의 익살과 끈질김이 와 닿았기에 바로 이웃으로 등록하고는 놀라움과 감탄으로 블로그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그의 짝지와 함께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와 함께 사는 김비 님은 그의 그림에서 많이 봐왔기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트랜스젠더 소설가’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고 많이 놀랐다. 동네 아줌마 같은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건형 님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박조건형 님 못지않게 힘겹게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에 이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서둘러 서평단을 신청해 읽게 되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에서는 박조건형 님과 김비 님이 살아온 현재진행형의 삶을 번갈아가며 들려주는데, 두 분이 겪은 하나의 일을 각자의 시선으로 적고 있다. 이들의 만남과 연애, 동거와 결혼, 여행과 일상,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이야기가 카톡을 주고받듯이 교차된다. 마치 두 분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첫 글인 <첫 만남>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처럼 흥미로웠고, <나의 시작>에서는 둘의 힘겨웠던 가족사가 안타까웠다. 물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나 냉전상태의 어색함도 살짝 드러나지만, 둘만의 방식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서로의 얼굴에 상대방의 발바닥을 자랑스럽게 갖다 대고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그의 그림**처럼...


  특히 박조건형 님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울증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단순한 증세인지 아니면 질병인지,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임신과 출산 초기에 많이 힘들어했던 아내가 생각나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는 그때를 회상할 때면, 당시에는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누적되는 육아의 힘겨움에 몸과 마음이 다운되곤 했었는데, 한번 기분이 꺾이기 시작하면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었고,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망막했었다. 나는 눈물을 보이며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도와주기보다는 도망치기 바빴던 것 같다. 지난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숨겨진 힘겨움이 느껴지기에 그저 미안하고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문학이라는 돌 하나로 무얼 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돈도 안되는 걸 왜 그리 오래 붙잡고 있냐고, 어서 내다 버리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번 생은 그 돌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살게 될 것 같다. 돈이 안 되고 걸작을 남기진 못하더라도, 울고 싶은 이들의 쪼그린 발 아래 집어 던질 수 있는 돌 하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김비”(p172)


  책 후반에 담긴 김비 님의 글에서처럼, 문학이라는 그녀의 돌은 그림이라는 박조건형 님의 돌이 되고, 또 행복이라는 그들의 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런 돌이 하나씩 모인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힘들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은 이 커플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싶다. 블로그와 소설, 그림을 통해 이들만의 삶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박조건형 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buddhkun2

** 서로 얼굴에 발(박조건형, https://blog.naver.com/buddhkun2/222039346277)


분류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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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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