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지은이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개 (1998/08/01)
읽은날 : 2011/05/2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되고 거두어줄 손길도 창백합니다. 염천과 폭우, 엄동한설을 어떻게 견뎌나갈지 아직 걱정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남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 (p59)

 통일혁명당 사건(1968)으로 무기징역을 선도 받고 복역(20년 20일)한 신영복 교수님의 옥중 서신으로 옥중에서 하루일과를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려 했던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는 달리 20년의 옥중생활을 시간 순으로 엮어놓았다.
 여기에는 수감생활의 갑갑함이나 반복적인 일상은 물론 부모, 형제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사색과 독서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편지글을 통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통일혁명당 사건이 정부에 의해 조작된 대표적인 조작사건이 밝혀졌음에도 이에 대한 억울함이나 서운함, 사회에 대한 원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도소에서 보내온 검열을 거친 서신이라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겠지만 이정도 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감옥이 아니라 어디 산천을 주유하고 돌아온, 20년 동안의 수형생활이 아닌 이 삼일간의 야유회를 다녀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뒤집어놓고 생각하면 수도자 같은 신영복 교수님의 이런 면모가 더욱 책을 빛내는 것 같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하소연 보다는 현재의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인상 깊다. 사회에 대한 복수심보다는 자신과 가족, 동료에 대한 애정으로 옥살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과연 나 같았으면 어떻게 보냈을까. 세상과 현실을 저주하며 20년을 보내지는 않았을까. 가족이나 친구는 꼴도 보기 싫고 삶 자체에 대한 회의로 하루하루의 삶도 지탱해나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또한 각각의 편지들은 한편의 시조를 보는 듯 기품이 있고 아름다웠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나 운동장 모퉁이 핀 들꽃, 쇠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노래하는 모습은 제한된 공간에 갇힌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옥중생활의 단순함마저도 인간의 품성을 수양하는 도장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유려한 글 못지않게 “정말 효자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몸은 멀리 철창 속에 유배되어 있을지언정 마음은 언제나 부모님과 형제 곁을 맴돌았다. 아버님께, 어머님께, 형수님께, 계수님께, 동생에게 라는 수신인만 보더라도 그의 관심과 사랑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겉으로만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아닌 몸속에서 채득된, 이미 삶 자체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의 편지는 어쩌면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기에 앞서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하는 극진함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문득 자유로운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투정과 짜증으로 부모님에 대해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신영복 교수님은 몇 줄의 글로 내 생활 깊숙한 곳에 숨겨진 부끄러움을 일깨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 밋밋한 감도 없질 않다. 20년간의 수형생활이 그렇겠지만 삼백여 페이지를 가득 채운 대동소이한 내용들이 읽는 이를 힘들게 했다. 물론 그의 정신이나 책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매체에 길들여진 탓인지 집중도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단번에 내쳐 읽기 보다는 몇 달의 기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지 싶다. 교도소의 단조로움을 통해 일상의 번잡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쉬엄쉬엄 읽어야 이 책의 참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난해한 문구들도 많이 보인다.
 “저는 새 교도소에 와서 느끼는 이 가등과 긴장을 교도소 특유의 어떤 것, 또는 제 개인의 특별한 경험 내용에서 연유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물의 모든 관계 속에 항상 있어온 ‘관계 일반의 본질’이 우연한 계기를 만나 잠시 표출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긴장과 갈등을 그것 자체로서 독립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도리어 이것을 통하여 관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시점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글자에 깃든 의미를 되새겨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렇게 한참을 궁리해서 들여다보면 그만 이전 글에서 느꼈던 감흥이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아직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못되는 것 같다.

 1988년 5월 31일 발송된 마지막 편지로 책은 마무리된다. 그가 출소하던 날이 8월 15일이었으니 대략 70여일 전인 샘이다. 책에 실리지 않은 편지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묘한 감상에 젓게 한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의 수감생활이 개인적인 위법행위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분단이라는 사회적 현실로부터 생겨난 부산물이기에 더욱 그렇지 싶다.
 끝으로 지금도 꾸준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신영복 교수님의 건강을 빌어본다.

분류 :
산문
조회 수 :
5712
등록일 :
2011.05.28
22:50:27 (*.182.220.169)
엮인글 :
http://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2499&act=trackback&key=c71
게시글 주소 :
http://freeismnet.cafe24.com/xe/2499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sort 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
38 산문 도적놈 셋이서 - 천상병, 중광, 이외수 freeism 4838   2011-04-08 2011-04-08 11:04
도적놈 셋이서 지은이 : 천상병, 중광, 이외수 출판사 : 답게 (1989) 읽은날 : 1998/10/28 "어라. 도인이 한명도 아니고 세명씩이나..." 첨 책을 봤을 때의 느낌이다. 한창 중광, 이외수님을 알기 시작할 때였으니... 책방에서 이...  
37 산문 꽃은 흙에서 핀다 - 김기철 freeism 5100   2011-04-08 2011-04-19 00:09
꽃은 흙에서 핀다 지은이 : 김기철 출판사 : 샘터 (1993/04/25) 읽으날 : 1998/10/10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읽다가 글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을 봤는지, 아님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적어놨는지는 잘 기억...  
36 산문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 이외수 freeism 5179   2011-05-01 2011-05-01 01:10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해냄 (2004/06/22) 읽은날 : 2004/11/29 1. 한 시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싱겁게 읽었다. 2. 작가의 일상을 적은 단편 글과 여백을 채운 삽화가 띄엄띄엄(?) 실려...  
35 산문 섬진강 이야기 - 김용택 freeism 5183   2011-04-11 2011-04-28 13:07
섬진강 이야기 (1, 2) 지은이 : 김용택 출판사 : 열림원 (1999/02/10) 읽은날 : 1999/03/18 기억 저편의 따스함을 간직한 책, 그리움과 여운이 있는 책, ... 어린시절 한곳(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용택 님의 살아가는 이...  
34 산문 아프니까 청춘이다 - 김난도 freeism 5183   2011-09-06 2011-09-30 13:13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은이 : 김난도 출판사 : 쌤앤파커스 (2010/12/24) 읽은날 : 2011/09/06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하는 자기개발서는 그 내용이나 결말이 정형화 되어있어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  
33 산문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 박남준 freeism 5187   2011-04-09 2011-04-19 00:07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지은이 : 박남준 출판사 : 실천문학사 (1998/09/24) 읽은날 : 1999/01/02 '성마니 니 박남준이라고 아나?' 그리곤 난데없는 웃음. 미소... 그리고 그 친구에게서 이 책을 빌려 받았다. '작고 가벼위질 때...  
32 산문 소리하나 - 이철수 freeism 5218   2011-04-12 2011-04-19 00:04
소리하나 지은이 : 이철수 출판사 : 문학동네 (1996/11/05) 읽은날 : 1999/05/10 판화가 이철수님의 판화산문집. 단순한 선으로 절제된 판화와 글들... 사람을 애기하고 나무, 눈, 달을 불교와 선이라는 하나의 큰 그릇에 담아...  
31 산문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 홍신자 freeism 5230   2011-04-09 2011-04-19 00:06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지은이 : 홍신자 출판사 : 안그라픽스 (1998/10/23) 읽은날 : 1999/01/25 자식에 대한 사랑과 춤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진 책이다. 춤을 추고, 인도를 여행하며, 딸을 그리워하는 한 어머...  
30 산문 무지개와 프리즘 - 이윤기 freeism 5256   2012-11-13 2012-11-14 00:01
무지개와 프리즘 지은이 : 이윤기 출판사 : 생각의 나무 (1998/11/05) 읽은날 : 2012/11/13 고등학교 시절 읽은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을 하나 읽었는데 그 책의 출판사가 "문성출판사"였다. 내 이름의 첫 두 글자가 같은 출...  
29 산문 자유라는 화두 - 김동춘 외 freeism 5354   2011-04-13 2011-04-13 11:05
자유라는 화두 지은이 : 김동춘 외 출판사 : 삼인 (1999/04/10) 읽은날 : 1999/10/20 부제로 '한국 자유주의의 열가지 표정'이 붙은 책... 화두,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강준만, 마광수, 복거일, 나혜석, 김수영, 최인훈...  
28 산문 빈 들에 나무를 심다 - 박광숙 freeism 5454   2011-04-12 2011-04-19 00:03
빈 들에 나무를 심다 지은이 : 박광숙 출판사 : 푸른숲 (1999/01/28) 읽은날 : 1999/05/20 김남주 시인의 아내, 박광숙님의 산문집으로 한 시인의 아내, 아들 토일이의 어머니, 그리고 자연을 일구는 한 농경민으로서의 생활과...  
27 산문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 김나미 freeism 5495   2011-04-28 2011-04-28 23:47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지은이 : 김나미 출판사 : 황금가지 (2003/10/11) 읽은날 : 2004/03/27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허탈감이 무겁게 짓누르는 요즘이다. 내 어깨에 짊어진 온갖 무...  
26 산문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 서갑숙 freeism 5708   2011-04-17 2011-04-17 23:53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지은이 : 서갑숙 출판사 : 중앙M&B (1999/10/15) 읽은날 : 1999/10/31 서갑숙님의 자전적 에세이. '외설스런 표현'이라는 이유로 요즘 한창 사회에 반항을 일으키고 있는 책으로 'S...  
» 산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freeism 5712   2011-05-28 2011-05-28 22:5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지은이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개 (1998/08/01) 읽은날 : 2011/05/28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되고...  
24 산문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이외수 freeism 5837   2011-04-07 2011-04-07 22:47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동문선 (1998/08/20) 읽은날 : 1998/09/11 외수, 외수, 외수형님... 어디갔다 이제 오십니까~ 정말 모처럼 보는 가슴이 따신 책이다.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아...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