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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지은이 : 김원영
출판사 : 푸른숲 (2010/04/05)
읽은날 : 2010/04/21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를 대놓고 차별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차츰 깨달아 갔다. 나는 늘 하나의 풍경인 것 같았다." (p19)


 그는 스스로를 '풍경'으로 묘사했다. 유심히 보지 않고는 그 존재감마저 모호한 연극무대의 소품이 되어 버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부족할 청소년 시기를 장애와 씨름하며 보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골형성부전증을 앓았다. 약간의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졌고 몇 번의 골절과 수술을 거치면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들어간 재활원에서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보살핌으로는 결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재활원에서 고등부로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특수시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했고 힘겨운 싸움 끝에 진학에 성공했다.


 일반 고등학교는 재활원이나 특수학교와 같이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물론 아니었다. 평범한 공간 속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동안 누려왔던 편리함과 외부적 지원을 스스로 벗어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주변의 시선과도 직접 맞닿으려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에 당당하게 맞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별난 시선과 싸우며 세상과 부딪혔다. '슈퍼 장애인'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였고 모든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친구 명륜이를 통해 알게 된 인간관이 인상 깊다. 공부에는 별 관심도 없고 게임과 운동밖에 하는 것이 없어 보였던 그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 혹은 그 이외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람 사이의 융화는 머릿속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와 지식을 몸에 익히거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한 헌신과 배려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세상에 대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헌신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일수록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명륜이와 함께 보낸 고교 생활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했고, 사람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p106)


 그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던 고등학교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드넓은 캠퍼스와 수많은 건물을 오가는 대학생활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장애인에게는 모든 것이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움직였다.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나 '이동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를 계기로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들어갔다. 이 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와 나의 부모가 져야 할 전생의 '업'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 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 치료사나 사회복지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장애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등이 전 세계의 장애인 운동과 사회과학적 연구들이 성취한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p129)


 "그랬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장애인이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생물학적 손상은 이미 그 자체로 몸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결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손상된 몸에 부여된 사회적 차별을 극복한다는 의미였다. 전공 책을 옆에 끼고 다니고, 높은 학점과 토익 점수를 따서 '정상적인 사회'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장애 학생들은,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p139)


 그는 자신의 장애를 또렷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닌, 비장애인의 구분되는 수직적인 관계도 아닌 그저 '장애인'일 뿐이었다.
 장애에 대한 그의 자각은 그 어떤 선언보다 가슴깊이 와 닿는다.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건 노인이건, 학벌이 높든 낮든,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마주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희망이 현실을 왜곡할수록 자신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져갔고 급기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져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결국 과거나 미래, 상대방과 비교하며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만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 '현실'이라는 가르침이 날카롭게 날아온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장애인들의 각성에도 불고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이방인 취급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불행 속에 갇혀 지내는, 항상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특별한 존재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시선이 장애인을 더욱 움츠려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를 더욱 고립되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분리된 특수교육은 그들의 사회진출을 영원히 차단할 뿐만 아니라 (일부겠지만)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나 회계부정도 여전히 존재한다. 재활원 방문을 개인의 선량함을 과시하는 공연장으로 이용하는 곳도 적지않다.
 우리는 사랑으로 나서는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우월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순과 비합리를 숨기기 위해 은연중에 장애인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너와 나, 혹은 장애인에 대해 더 이상 둘러말하지 말자. 장애인은 장애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마주하자. 장애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일종의 각성제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회의 벽을 과감하게 깨뜨린 그에게도 아무런 갈등이나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자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제는 제법 '잘나가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어 하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회적 차별과 장애인의 인권을 외치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의 벽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의 중첩된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은 그 모든 것에 일정한 책임감은 느끼지만 어느 것에도 공감하지 않은 채 서로를 회피하고 있었다. 장애인인 나는 일반적인 이십대로서의 삶에 공감하지 않으려 했고, 대학을 다니는 이십대의 나는 장애인인 내 존재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태도는 내가 그 모든 정체성이 겪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했지만, 어떤 정체성도 진심으로 살아낼 수는 없게 했다." (p256)


 어쩌면 쿨함과 쫀쫀함, 장애인과 비장애인, 슈퍼 장애인과 인간 김원영 사이에서 선 그의 갈등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지 싶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면을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부른 이유를 철저하게 통감하게 된다. 장애 문제를 떠나 인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나와는 열 살 가까이 어린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크고 우람해 보인다. 그의 앞길에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열린 마음을 우리 사회에 기대해본다.


* p.s
 참, 그의 책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여섯 개로 구분된 각 장이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엮여있어 부드럽게 이어진 언덕처럼 자연스럽다. 한두 가지 소소한 일상의 끈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이 여느 글 못지않다.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독서 때문인지 글을 꾸려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번잡하지 않은 글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고 자유롭지 못했던 육체는 정신의 자양분이 되어 글로써 날아다녔다. 그의 정신 못지않게, 그의 글에서 또 한 번의 감동을 맛본다.
 화이팅 김원영!

분류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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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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