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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지은이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개 (1998/08/01)
읽은날 : 2011/05/2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되고 거두어줄 손길도 창백합니다. 염천과 폭우, 엄동한설을 어떻게 견뎌나갈지 아직 걱정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남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 (p59)

 통일혁명당 사건(1968)으로 무기징역을 선도 받고 복역(20년 20일)한 신영복 교수님의 옥중 서신으로 옥중에서 하루일과를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려 했던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는 달리 20년의 옥중생활을 시간 순으로 엮어놓았다.
 여기에는 수감생활의 갑갑함이나 반복적인 일상은 물론 부모, 형제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사색과 독서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편지글을 통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통일혁명당 사건이 정부에 의해 조작된 대표적인 조작사건이 밝혀졌음에도 이에 대한 억울함이나 서운함, 사회에 대한 원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도소에서 보내온 검열을 거친 서신이라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겠지만 이정도 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감옥이 아니라 어디 산천을 주유하고 돌아온, 20년 동안의 수형생활이 아닌 이 삼일간의 야유회를 다녀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뒤집어놓고 생각하면 수도자 같은 신영복 교수님의 이런 면모가 더욱 책을 빛내는 것 같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하소연 보다는 현재의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인상 깊다. 사회에 대한 복수심보다는 자신과 가족, 동료에 대한 애정으로 옥살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과연 나 같았으면 어떻게 보냈을까. 세상과 현실을 저주하며 20년을 보내지는 않았을까. 가족이나 친구는 꼴도 보기 싫고 삶 자체에 대한 회의로 하루하루의 삶도 지탱해나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또한 각각의 편지들은 한편의 시조를 보는 듯 기품이 있고 아름다웠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나 운동장 모퉁이 핀 들꽃, 쇠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노래하는 모습은 제한된 공간에 갇힌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옥중생활의 단순함마저도 인간의 품성을 수양하는 도장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유려한 글 못지않게 “정말 효자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몸은 멀리 철창 속에 유배되어 있을지언정 마음은 언제나 부모님과 형제 곁을 맴돌았다. 아버님께, 어머님께, 형수님께, 계수님께, 동생에게 라는 수신인만 보더라도 그의 관심과 사랑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겉으로만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아닌 몸속에서 채득된, 이미 삶 자체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의 편지는 어쩌면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기에 앞서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하는 극진함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문득 자유로운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투정과 짜증으로 부모님에 대해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신영복 교수님은 몇 줄의 글로 내 생활 깊숙한 곳에 숨겨진 부끄러움을 일깨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 밋밋한 감도 없질 않다. 20년간의 수형생활이 그렇겠지만 삼백여 페이지를 가득 채운 대동소이한 내용들이 읽는 이를 힘들게 했다. 물론 그의 정신이나 책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매체에 길들여진 탓인지 집중도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단번에 내쳐 읽기 보다는 몇 달의 기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지 싶다. 교도소의 단조로움을 통해 일상의 번잡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쉬엄쉬엄 읽어야 이 책의 참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난해한 문구들도 많이 보인다.
 “저는 새 교도소에 와서 느끼는 이 가등과 긴장을 교도소 특유의 어떤 것, 또는 제 개인의 특별한 경험 내용에서 연유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물의 모든 관계 속에 항상 있어온 ‘관계 일반의 본질’이 우연한 계기를 만나 잠시 표출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긴장과 갈등을 그것 자체로서 독립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도리어 이것을 통하여 관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시점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글자에 깃든 의미를 되새겨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렇게 한참을 궁리해서 들여다보면 그만 이전 글에서 느꼈던 감흥이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아직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못되는 것 같다.

 1988년 5월 31일 발송된 마지막 편지로 책은 마무리된다. 그가 출소하던 날이 8월 15일이었으니 대략 70여일 전인 샘이다. 책에 실리지 않은 편지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묘한 감상에 젓게 한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의 수감생활이 개인적인 위법행위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분단이라는 사회적 현실로부터 생겨난 부산물이기에 더욱 그렇지 싶다.
 끝으로 지금도 꾸준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신영복 교수님의 건강을 빌어본다.

분류 :
산문
조회 수 :
5660
등록일 :
201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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