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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관촌수필


지은이 : 이문구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1977/12/15)
읽은날 : 2003/12/22


관촌수필 이문구님의 자전적 연작 소설로 여덟 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관촌부락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연작의 단편 영화들이 극장 스크린에 비춰지듯 눈앞에서 흘러간다. 순간 ‘빗줄기’ 가득한 흑백영화 속의 관촌을 거닌다.
작가는 자신과 이웃, 관촌을 회상한다. 변덕스럽지만 점점 성장해가는 어린 화자의 눈매가 다정하면서 예리하게 그려진다. 순박한 이웃들이지만, 때로는 고집 세고, 무지하고, 어린(심지어 어린 화자의 눈에도) 관촌사람들...


유교적이고 고지식한 할아버지가 지켜내고자 했던(일락서산), 전쟁으로 황패한 몸과 마음이 잠시 쉬어 갈만한(화무십일), 억척스러우면서도 따뜻이 맞아주는 누나 같은(행운유수), 여기저기서 손가락질 당할망정 믿음직하고 든든한 기둥 같은(녹수청산), 다 떠나고 점점 퇴색될망정 처음의 풋풋함을 그대로 지키나가는(공산토월), 인정도 못 받고 굳은 일은 도맡아 하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은(관산추정), 순박한 나머지 산업화 속에 어수룩하게 당하고만 살아가는(여유주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월곡후야) 농촌, 농촌사람들의 이야기다.


각 단편(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유주서, 월곡후야)을 담당하는 주연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한파도 다 녹여버린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속에 따스함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다.
언젠가 친구의 할머니가 끓여준 청국장, 나무화덕에 숯을 넣어 그 위에 솥을 올리고 먹던 그 구수한 맛이 입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30여년의 거리감은 들지 않는다. 케케묵은 옛날얘기처럼 들릴 것을 이문구님이 구수하고 다정하게 풀어놓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반들반들 손길을 타는 목가구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그 향기를 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70, 80년대에 한창 밀어붙였던 ‘공업화’와 ‘새마을’의 열병 역시 관촌수필에 담겨있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돈을 찾아 도시로 떠나버리고 할아버지들만 남는다. 허울뿐인 농사는 최소한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하고, 유입되는 도시의 구정물로 농심 역시 흐려진다.
그 허전함을 감추려는 듯 지붕들만 빨강, 파랑으로 번쩍이게 뜯어고친다. 우리들의 고향은 농지를 가르며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처럼 점점 삭막해져 간다.
그 과정이 이문구님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녹아있어 씁쓸한 웃음을 띠게 만든다.


이문구책을 덮고 뒤표지의 ‘헐크’같이 산발한 머리로 나무를 다듬는 이문구님의 모습을 본다. 관촌을 여행할 때 느꼈던 구수함과 털털함,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조금 어설퍼 뵈지만 따스함이 있고, 부족한 듯하지만 넉넉함이 있는 질그릇 같은 모습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그 무엇을 발견한다.


관촌수필을 통해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와 닿는 까칠까칠한 느낌과는 달리 봄 햇살 같은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분류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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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9
등록일 :
20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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