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레디메이드 인생


지은이 : 채만식
편집인 : 한형구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2004/12/03)
읽은날 : 2011/01/17


레디메이드 인생  <레디메이드 인생>
 1934년을 살아가는 인텔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비루하게 그려진다. 빈곤한 시대에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한 M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생활한다. 하지만 그나마 갖고 있던 얼마만의 돈마저도 구걸하듯 애원하는 매춘부에게 줘버린다. 설상가상으로 형에게 맡겨둔 아이까지 자신이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된 M은 자신의 인생을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라고 자조한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회적 필요에 의해 대량생산된, 현대사회의 화려한 부산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민지배 아래에서의 인텔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도, 사회적 부조리를 개선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날그날 억지스럽게 살아가는 길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차라리 그날의 생활만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용 노동자였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와 흐름에 한발 비껴서버린 그들의 행보가 허허로워 보인다. 갈 곳을 잃어버린 젊은 지식층의 모습이 길잃은 조선 황실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된다. 단돈 20전에 정조를 팔아버리는 매춘부의 애절함처럼 그 시대(1930년대)에 팽배했던 우리의 실상이 아니었을까.


 <미스터 방>
 해방과 함께 친일행적으로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백주사와 미군정을 등에 없고 한순간에 인생 역전에 성공한 '미스터 방'. 백주사의 하소연을 들은 미스터 방은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아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아뿔사!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미스터 방 또한 미군에 기생하는 한낮 하루살이일 뿐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한 상황에서 일어난 넌센스는 우리 근현대사에 숨어있는 비극과 닮아있다. 누가 누구를 흉보고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민족의 죄인>
 문인으로 활동하던 나는 일제 강점기 때 몇 번의 대일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강연을 떠난 적이 있다. ‘일신의 안전’을 위해 참여한 소극적인 친일활동이라지만 하루하루 빠져드는 대일 협력자라는 수렁에 더럭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일본의 청탁이 미치지 못하는 농촌으로 귀향을 결심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 친일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거나 잡아들이는 등의 적극적 친일파와는 달리 가족의 부양과 사회적 분위기, 회유와 협박을 통해 친일활동에 가담하게 된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그날의 배를 굶지 않기 위해 했던 소소한 일거리가 친일이라는 딱지로 돌아왔던 경우에 과연 그 행위의 일면만 놓고 친일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이적행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던 본인들의 잘못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촉각을 다투는 가족과 개인의 운명 앞에 단호하게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문득 채만식의 행적이 궁급해진다. 최근(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 싶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와 타협할 수도, 그렇다고 과감히 맞설 수도 없었던 당시의 고뇌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민족의 죄인>은 해방 후 문학계에 던지는 작가의 고백이자 반성이 아닌가 싶다.


 <치숙>
 1930년대 사회주의를 바라보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회주의를 단지 “부자에게 뺏은 돈을 나누어 갖는다”고 이해했던 당시 모습이 인상 깊다. 사회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유인지 우익진영의 일방적인 매도인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그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삶은 어전히 고달팠다. 어쨌든 폐병에 걸린 한 사회주의자의 무기력함과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시장경제의 꼭지점에 올라서려는 화자의 대비가 인상 깊다.


 <낙조>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면서 흥망을 거듭했던 황주댁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한 개인의 아픔이라기 보다는 시대가 가져다 준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우리는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그렇게 버텨왔고 살아왔다. 그 미증유의 삶이 서쪽 하늘의 낙조처럼 아스라이 펼쳐진다.
 해방과 신탁통지, 그리고 38선의 생성과 전쟁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이 좌우의 대립으로 격하게 휘몰아치던 그 때, 채만식 선생은 우리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낙주>에서는 작가의 그런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마 채만식 선생도 급진주의자는 못된 것 같다. 옳다고 하는 것, 정의라고 하는 당시의 사회 통념도 동전의 양면처럼 어두운 면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 그림자를 채만식 선생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지 않았나싶다. 친일파, 좌익과 우익, 그리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전쟁과 통일의 이념이 뒤섞인 혼란기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통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 전쟁을 겪었더라만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분류 :
한국
조회 수 :
5324
등록일 :
2011.05.11
00:13:17 (*.182.220.169)
엮인글 :
http://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2073&act=trackback&key=516
게시글 주소 :
http://freeismnet.cafe24.com/xe/207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sort 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
83 한국 벽오금학도 - 이외수 freeism 6013   2011-04-08 2011-04-08 11:00
벽오금학도 지은이 : 이외수 출판사 : 동문선 (1992/05/01) 읽은날 : 1998/10/18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뭐라고 할지... 옛날, 이 책을 처음 접할 때의 설레임이나 신비함들은 전 같지 않다. 황당한 이야기들, 선계, 도, 오학동...  
82 한국 고래 - 천명관 freeism 5954   2012-02-12 2012-02-12 07:33
고래 지은이 : 천명관 출판사 : 문학동네 (2004/12/24) 읽은날 : 2012/02/11 # 1. 검푸른 바다를 소리없이 유영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깊은 숨을 몰아쉬는 당신은 고래를 본 적이 있나요? 가난과 절망에 찌들어버...  
81 한국 7년의 밤 - 정유정 freeism 5791   2012-01-15 2012-01-15 23:50
7년의 밤 지은이 : 정유정 출판사 : 은행나무 (2011/03/23) 읽은날 : 2012/01/15 책 표지를 넘기자 목차가 보이고 바로 소설이 시작된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좋다. 어떤 책은 책머리에 작가의 말이니 뭐니 해서 사족이 ...  
80 한국 왕을 찾아서 - 성석제 freeism 5787   2011-06-17 2011-06-19 02:01
왕을 찾아서 지은이 : 성석제 출판사 : 문학동네 (2011/02/15) 읽은날 : 2011/06/1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순정>(<도망자 이치도>)에서 이미 봐왔듯 시공을 초월한 독특한 분위기와 끊임없이 터지는 유머로 많은 이의 신뢰...  
79 한국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freeism 5780   2011-04-21 2011-04-21 10:0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은이 : 조세희 출판사 : 이성과 힘 (1978/06/05) 읽은날 : 2000/11/02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읽기 시작한다. 부분부분의 에피소드가 거대한 줄기를 만들면서 하나의 소설이 된다...  
78 한국 설계자들 - 김언수 freeism 5634   2011-05-11 2012-10-16 23:49
설계자들 지은이 : 김언수 출판사 : 문학동네 (2010/08/15) 읽은날 : 2011/01/03 호젓한 숲을 찾아 자리를 편다. 러시아제 7.62구경 드라구노프를 조립하며 오늘의 목표물을 생각한다. 망원렌즈에 초점을 조정하고 목표물을 확인...  
77 한국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freeism 5513   2011-05-01 2011-05-01 01:1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지은이 : 박완서 출판사 : 웅진닷컴 (1992/10/15) 읽은날 : 2004/12/08 오늘날의 우리 문단을 구성하는 거대한 여류작가, 박완서님의 기억을 쫓아 책을 들었다. 개성 박적골에서의 어린시절과 서...  
76 한국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freeism 5500   2011-04-18 2011-04-18 23:56
김약국의 딸들 지은이 : 박경리 출판사 : 나남 (1993/01/15) 읽은날 : 2000/04/14 봉룡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수(김약국)로 이어진 다섯 딸(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에 얽힌 집안사, 여인사... 잘나가는 집안이 점점 '콩가루 집...  
75 한국 무진기행 - 김승옥 [1] freeism 5463   2012-03-11 2012-07-13 13:25
무진기행 지은이 : 김승옥 출판사 : 민음사 (1980/11/30) 읽은날 : 2012/03/10 <무진기행> (1964) 잘나가는 처가의 도움을 받으며 그럭저럭 제약회사에 다니던 윤희중은 전무 승진을 앞두고 무진으로 휴양을 온다. 그의 고...  
74 한국 캐비닛 - 김언수 freeism 5414   2012-10-22 2012-10-22 22:27
캐비닛 지은이 : 김언수 출판사 : 문학동네 (2006/12/17) 읽은날 : 2012/10/22 살인청부업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해낸 <설계자들>을 통해 작가 김언수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캐비닛>이라는 발칙한 소설로 상...  
73 한국 아가 - 이문열 freeism 5412   2011-04-18 2011-04-18 23:59
아가 지은이 : 이문열 출판사 : 민음사 (2000/03/16) 읽은날 : 2000/05/09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부제와 붉은색 표지, 거기에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이름. 내가 책을 집어든 이유이자 바램일 것이다. 책을 즐겨읽기 시작...  
72 한국 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1] freeism 5359   2011-09-28 2011-09-28 12:07
내 젊은 날의 숲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문학동네 (2010/11/02) 읽은날 : 2011/09/27 소설이라기 보다는 숲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산문집 같았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아침 수목원처럼 무겁고 눅눅했다. 솔가지에 매달린 이...  
» 한국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freeism 5324   2011-05-11 2011-05-11 00:13
레디메이드 인생 지은이 : 채만식 편집인 : 한형구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2004/12/03) 읽은날 : 2011/01/17 <레디메이드 인생> 1934년을 살아가는 인텔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비루하게 그려진다. 빈곤한 시대에 취직자리를 구하...  
70 한국 도모유키 - 조두진 freeism 5302   2011-05-04 2011-05-04 00:59
도모유키 지은이 : 조두진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 (2005/07/21) 읽은날 : 2007/05/07 국가간에 시작된 전쟁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되돌아왔다. 적이라지만 이는 국가 통수권자의 적일뿐 총칼을 집...  
69 한국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성석제 freeism 5173   2011-04-28 2011-04-28 23:39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지은이 : 성석제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2002/06/25) 읽은날 : 2003/12/08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얘, 만수야~ 만그이 읍냐(없냐)?’ 코믹하면서 빠르게 전개되는 만근이의 일대기에서 오래전에 방영되...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