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낯익은 세상 


지은이 : 황석영
출판사 : 문학동네 (2010/05/19)
읽은날 : 2011/10/11


낯익은 세상  

  "도시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들을 미처 먹어치우지 못하고 묵히다가, 또는 너무 많이 먹다먹다 질려서 버려대고 있었다. 비닐 속에서 녹아 미끈거리는 얼렸던 밥덩이며, 물주머니 같은 비닐에 가득한 굴이며, 말라비틀어진 생선이며, 녹지 않은 고깃덩이들, 겉잎사귀만 벗겨내면 아직도 싱싱한 노란 양배추, 새벽 수산시장에서 버려진 엄청난 내장들과 생선의 대가리 꼬리 또는 팔다 남은 멀쩡한 것들, 그야말로 이런 때 며칠은 꽃섬 사람에게 밤마다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p94)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며 생활하는 꽃섬 사람들. 추석 명절이 지나자 잔칫날 같은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다. 얼마 전에 엄마와 함께 이사온 딱부리도 이곳 생활에 적응해 추석의 '버려진 해택'을 맘껏 누렸다.
  그날 밤, 딱부리와 땜통(딱부리의 이복동생)은 메밀묵을 먹고 싶다는 김서방네 아이를 만난다. 사실 김서방네 가족은 오래전 여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혼백들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딱부리와 땜통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빼빼엄마와 함께 묵과 막걸리를 이들에게 대접한다.
  그에 대한 대가였는지 김서방네 아이는 땜통에게 금붙이와 돈뭉치가 묻혀있는 곳을 알려준다. 큰돈을 손에 쥐게 된 딱부리와 땜통. 도심을 배회하며 물질문명에 취해보는 것도 잠시, 이들의 행복은 검붉게 타오르는 화마와 함께 산산 조각나 버린다...
 
  황석영이 말하는 세상은 새 것이 헌 것으로 바뀌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순환의 과정이다. 오늘의 슬픔이나 내일의 즐거움 역시 서로의 인과관계를 따라 돌고 도는 것. 결국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머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p228)


  낯익은 세상은 낯선 세상에 대한 설익은 농담처럼 모순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낯익은' 것에 대한 반감, 혹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속내를 들켜버린 것 같은 무안함이랄까. 미처 우리가 담아내지 못했던 근현대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며 공감하는 정도에서 그칠 뿐 더 이상의 감정이입은 되지 않는다. 오래된 정원에서도 그랬듯이 여기서도 오래전에 죽은 혼령이 등장한다. 아마 그 때문인지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유식하게 말하면 '리얼리티'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반복되는 일상에 치어 살다보니 나 역시도 현실의 노예가 되어버린 걸까. 소설을 대할 때도 그 속의 감성을 잡으려하기 보다는 이성적인, 논리적인 구성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머리를 식혀야할 때가 온 것일까?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읽으면 좀 괜찮아질까. 낯익은 소설을 통해 낯선 나를 깨닫게 된다...

 

분류 :
한국
조회 수 :
4454
등록일 :
2011.10.12
11:03:29 (*.43.57.253)
엮인글 :
http://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3272&act=trackback&key=c53
게시글 주소 :
http://freeismnet.cafe24.com/xe/327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sort
83 한국 28 - 정유정 freeism 2890   2013-11-07 2013-11-08 12:08
28 지은이 : 정유정 출판사 : 은행나무 (2013/06/16) 읽은날 : 2013/11/07 그녀의 대표작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을 통해 빠른 속도감과 숨 막히는 스토리에 빠져든 나는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82 한국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freeism 2998   2013-07-10 2013-07-11 10:01
달콤한 나의 도시 지은이 : 정이현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2006/07/24) 읽은날 : 2013/07/10 모처럼 맛보는 초코케익처럼 자극적이고 달콤하다. 아래턱 침샘에서 시작된 전류는 온 몸을 전율케 했고 한 스푼에 칼로리가...  
81 한국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 정유정 freeism 3509   2013-06-19 2013-06-19 07:45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지은이 : 정유정 출판사 : 비룡소 (2007/06/25) 읽은날 : 2013/06/18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2007)는 <내 심장을 쏴라>(2009), <7년의 밤>(2011)를 통해 강열한 인상을 심어줬던 정유정 님의 대표작으로 그...  
80 한국 아가미 - 구병모 freeism 3415   2013-05-14 2013-05-15 05:29
아가미 지은이 : 구병모 출판사 : 자음과 모음 (2011/03/23) 읽은날 : 2013/05/14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세상의 2/3이 물로 이뤄져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반 이상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수영을 배웁니다...  
79 한국 캐비닛 - 김언수 freeism 5447   2012-10-22 2012-10-22 22:27
캐비닛 지은이 : 김언수 출판사 : 문학동네 (2006/12/17) 읽은날 : 2012/10/22 살인청부업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해낸 <설계자들>을 통해 작가 김언수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캐비닛>이라는 발칙한 소설로 상...  
78 한국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1] freeism 7147   2012-07-05 2014-03-22 13:09
원미동 사람들 지은이 : 양귀자 출판사 : 살림 (1987/11/18) 읽은날 : 2012/07/04 서쪽으로 구월산(지금은 윤산)을 끼고 있는 금사동은 부산이라고는 하지만 2,30분은 버스를 타고나가야 시내에 닿을 수 있는 변두리에 속했다. ...  
77 한국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freeism 7012   2012-03-20 2012-03-20 12:22
엄마를 부탁해 지은이 : 신경숙 출판사 : 창비 (2008/11/10) 읽은날 : 2012/03/18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말로 소설을 시작된다. 생일잔치를 위해 시골서 올라온 아버지는 함께 올라온 어머니를 서울역에서 놓쳐...  
76 한국 무진기행 - 김승옥 [1] freeism 5485   2012-03-11 2012-07-13 13:25
무진기행 지은이 : 김승옥 출판사 : 민음사 (1980/11/30) 읽은날 : 2012/03/10 <무진기행> (1964) 잘나가는 처가의 도움을 받으며 그럭저럭 제약회사에 다니던 윤희중은 전무 승진을 앞두고 무진으로 휴양을 온다. 그의 고...  
75 한국 고래 - 천명관 freeism 5982   2012-02-12 2012-02-12 07:33
고래 지은이 : 천명관 출판사 : 문학동네 (2004/12/24) 읽은날 : 2012/02/11 # 1. 검푸른 바다를 소리없이 유영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깊은 숨을 몰아쉬는 당신은 고래를 본 적이 있나요? 가난과 절망에 찌들어버...  
74 한국 7년의 밤 - 정유정 freeism 5815   2012-01-15 2012-01-15 23:50
7년의 밤 지은이 : 정유정 출판사 : 은행나무 (2011/03/23) 읽은날 : 2012/01/15 책 표지를 넘기자 목차가 보이고 바로 소설이 시작된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좋다. 어떤 책은 책머리에 작가의 말이니 뭐니 해서 사족이 ...  
73 한국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freeism 4380   2011-11-06 2011-11-07 21:4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지은이 : 박민규 출판사 : 예담 (2009/07/20) 읽은날 : 2011/11/05 조르바는 거침이 없고 대담하고 섬세했으며 야성적이었고 원초적이었고 감성적이었으며 사려깊었다. 순박하지만 저돌적이었고 따뜻하...  
» 한국 낯익은 세상 - 황석영 freeism 4454   2011-10-12 2011-10-12 11:30
낯익은 세상 지은이 : 황석영 출판사 : 문학동네 (2010/05/19) 읽은날 : 2011/10/11 "도시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들을 미처 먹어치우지 못하고 묵히다가, 또는 너무 많이 먹다먹다 질려서 버려대고 있었다. 비닐 속에서 녹아 ...  
71 한국 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1] freeism 5384   2011-09-28 2011-09-28 12:07
내 젊은 날의 숲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문학동네 (2010/11/02) 읽은날 : 2011/09/27 소설이라기 보다는 숲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산문집 같았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아침 수목원처럼 무겁고 눅눅했다. 솔가지에 매달린 이...  
70 한국 왕을 찾아서 - 성석제 freeism 5808   2011-06-17 2011-06-19 02:01
왕을 찾아서 지은이 : 성석제 출판사 : 문학동네 (2011/02/15) 읽은날 : 2011/06/1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순정>(<도망자 이치도>)에서 이미 봐왔듯 시공을 초월한 독특한 분위기와 끊임없이 터지는 유머로 많은 이의 신뢰...  
69 한국 허수아비춤 - 조정래 freeism 5053   2011-05-11 2011-05-11 00:17
허수아비춤 지은이 : 조정래 출판사 : 문학의문학 (2010/10/01) 읽은날 : 2011/02/08 "화염병을 앞세우고 가투에 몸 던졌던 그때 군부독재를 물리치는 '정치민주화'만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고루 혜택을 누리며 살...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