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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병신과 머저리


지은이 : 이청준
출판사 : 열림원 (2001/12/15)
읽은날 : 2010/12/15


병신과 머저리  장편소설 12권, 중단편소설 10권, 연작소설 3권 등으로 이루어진 <이청준 문학전집> 중에서 주제별로 정리된 중단편집이다. 여기에 실린 중단편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의 작품들로 아마도 병신, 머저리라는 제목이 갖고 있는 뉘앙스와 관련이 있는 중단편을 모아놓았지 싶다. 두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들의 이야기거나 아니면 내, 외적인 요인에 의해 억압받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을 그리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여기에 실린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아이 밴 남자>
 복어중독으로 부모님을 잃고 사팔뜨기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그는 장의사 일을 하면서 늘 죽음 곁을 맴돌았다. 언제고 돈을 벌어 여동생에게 오빠 구실 한번 제대로 해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여동생의 약을 먹고 자살해 버린다. 부지불식간에 닥친 그녀의 죽음에 그는 심한 복통을 일으켰고 이를 본 행인이 "허허 그럼 애라도 서는 모양이구료!"라며 농을 던지고 사라진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의 복통은 동생에 대한 증오와 안타까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연민이 어우러진 응어리가 아니었을까.


 <병신과 머저리>
 "형은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웠다. 언제나 망설이기만 할 뿐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 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의사인 형은 수술 도중 죽은 한 소녀를 통해서 동료를 죽인 뒤에야 적진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6.25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형처럼 뚜렸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버렸다. 사랑하는 여인을 무책임하게 떠나보내고 광활한 화폭 뒤로 숨어버렸다. '머저리 병신'이라는 형의 욕설에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근원이 뚜렷한 아픔 이였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 시작을 알 수없는 상처는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사회적 아픔과 내적 상처 사이의 경중을 놓고 벌이는 우리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6.25와 같은 시대의 문제를 사랑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와 섞어 풀어낼 수 있는 이청준 님의 능력이 돋보인다.


 <등산기>
 서울 근교의 천마산을 오르는 부녀의 이야기다. 한때 산행 팀을 이끌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력이 떨어져 일행의 끝을 쉬엄쉬엄 따라가는 처지가 된 아버지. 그를 보는 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꼭 기행문이나 산행기을 적었다. 얼마 전에는 설악산 산행기를 토대로 소설을 써 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 순으로 나열된 풍경과 감상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이 밋밋한 글이 되고 말았다. 이청준 님의 <등산기>는 산행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산을 오르는 사람의 이야기가 산의 정경과 어우러져 극적인 사건 없이도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나왔기에 기행문이나 산행기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만큼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 단편집을 읽은 뒤에는 필사를 해봐야겠다.


 <낮은 목소리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가장 큰 반사회적 행동은 텔레비전 수상기 등록 없이 공짜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청료쯤으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등록받으러 나온 방송공사 직원을 텔레비전이 없다고 속이고 불법적인 시청을 계속해왔다.
무능하게 비춰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 혹은 세상의 온갖 '한탕'에 끼어들지 못해 겉돌았던 자신의 대리만족이 아니었을까. 이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범생이 아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밖에도 보일듯 말듯 다가오는 한국식의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치자꽃 향기>, 조화가 갖고 있는 완전함과 비현실성을 으스스하게 다룬 <꽃과 뱀> 등 인간의 내면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주어진 억압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작가는 결국 허물어지고 비틀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불완전성, 그 속에 숨어있는 삶에 대한 갈구와 노력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류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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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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