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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빅 픽처 (The Big Picture)

지은이 : 더글라스 케네디 (Douglas Kennedy)
옮긴이 : 조동섭
출판사 : 밝은세상 (2010/06/10)
읽은날 : 2010/10/07


빅 픽처  4시 46분 15초. 고요한 사무실 한쪽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시계는 여전히 바삐 움직인다. 15를 출발한 초침은 길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 20을 넘어가고 있다. 검은 바늘은 미세한 떨림과 함께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시간의 무한일주는 북적거리는 사무실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모니터에 머리를 처박은 체 타이핑에 열중하는 동료의 모습은 높이 쌓인 서류더미를 뒤지는 손길처럼 바빠 보였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시계를 쳐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4시 50분으로 정해진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할 일을 접어둔 체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듯 시간의 움직임을 주시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간 들 육아에 지친 아내의 푸념을 들어야 했고 그 후에는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세 명의 아이들과 씨름해야 했다. 그렇다고 집 이외에 딱히 갈만한 곳도 없다. 술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검진 후에 알게 된 몸의 이런저런 잔 고장으로 맘 편히 술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저 집과 직장,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시간의 테두리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초침은 우리들의 일상처럼 따분하게 느껴졌다. 안정된 직장과 매달 들어오는 적지 않은 월급, 편안한 아내와 건강한 아이들이 있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은 언제나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한 달에 한 번씩 근교산을 올랐고 저녁이면 땀을 뒤집어 쓸 만큼 인근 하천을 달렸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부드러운 고기를 썰기도 했지만 2% 부족한 현실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5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동료들이 보인다. 부장의 눈치를 살핀 나는 적당히 일을 마무리 해 버렸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환한 빛덩어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여기 취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결혼 전만 해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빅 픽처> 역시 이런 공허함에서 출발한다. 사진이라는 꿈을 접고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선택한 순간부터 벤의 갈망은 시작되었다. 몇 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사 모으고 세상을 찍어댔지만 그 허전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과 단란해 보이는 가족,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는 자신에 대한 불만을 채울 수 없었다. 벤의 옆집에 사는 게리 역시 사진을 찍었지만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늘 퇴짜만 당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는 게리에게 남은 것은 허풍으로 치장한 자존심뿐이었다.
 바로 그때, 벤의 일생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은, 자신이 꿈꿔온 미래와 안정된 현실을 역전시켜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벤은 자신의 아내가 게리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하고는 충동적으로 게리를 살해해버린 것이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게 된 벤은 변호사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사진사 게리로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요트사고를 위장해 자신을 ‘죽여’버리는 대신 게리의 운전면허증을 위조해 그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용한 산간마을로 숨어든 벤, 아니 게리는 사진을 찍으며 제2의 삶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거짓된 삶에 대한 불안감도 커져갔다. 급기야 우연하게 목격한 산불현장을 찍은 사진이 미국 전역의 여러 매체에 실리면서 그의 명성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누구나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시골의 한적한 아틀리에에서 그림에 몰두하는 화가나 글을 통해 인간의 회로애락을 표현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완벽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놓쳐버린 '또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한 번을 살다가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더욱 미련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어쩌면 미지의 삶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이해관계와 속박에서 벗어나 새롭게 인생을 그려보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삶에 존재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그 도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벤 역시 변호사로서의 성공보다는 사진사로서의 삶에 더 흥미를 느꼈다. 비록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젊은 날에 가졌던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 직장의 속박이 사라진 공간은 사진으로 대신했고 앤을 통해 식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도 되찾았다. 불안하게 출발했던 게리의 삶은 불완전한 벤의 삶을 완벽하게 대신했다.
 나 역시도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인정하는 편안함 대신 젊은 날을 휘감았던 열정에 빠져보고 싶었다. 한 가지 일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젊은 날의 열정을 찾고 싶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내면의 욕구에 충실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미지의 삶을 위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럴 용기도 없을 뿐더러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가족의 갑갑함은 그 속에 숨어있는 포근함을 대신하지 못했고 획일적으로 반복되는 직장에서도 다양한 친목과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다. 직장에서의 각박한 하루가 있기에 가정에서의 안식이 존재할 수 있듯이 안정된 가정이 있기에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가족과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재깍거리는 초침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상을 대변했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도 선사했다. 퇴근길에 만난 햇빛은 눈을 뜰 수 없이 강열했지만 이네 적응되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우리가 보는 달은 어둠의 이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살아보지 못한 삶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지만 인간 욕심에는 끝이 없다. 설사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바랐던 삶을 선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생활이 온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마 또 다른 욕구를 찾아, 다시 새로운 삶을 갈구하게 되지는 않을까.
 어디를 가든 우리에게 맞춤된 인생은 없다. 상상 속의 날들을 꿈꾸며 삶을 허비하기 보다는 현실의 토대 위에 미래를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평범한 듯 지나가는 일상에서 더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척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경력, 집, 가족, 빚,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안전을,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제공하니까. 선택은 좁아지지만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가정이 지워주는 짐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떠안는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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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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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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