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ism.net
   
책(Book) 여행(Tour) 사진(Photo) 잡문(Memo) 게시판(Board)  
   > 책에는...      > 책 이야기
     
 
 
- 책에는...
- 책 이야기

  [1년에 50권 읽기]
   - 2012년 (30)
   - 2011년 (33)
   - 2010년 (59)

책에는...

지상의 숟가락 하나


지은이 : 현기영
출판사 : 실천문학사 (1999/03/15)
읽은날 : 2004/06/18


지상의 숟가락 하나 “이 글을 쓰는 행위가 무의식의 지층을 쪼는 곡괭이질과 다름없을진대, 곡괭이 끝에 과거의 생생한 파편이 걸려들 때마다, 나는 마치 그때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사는 것처럼 희열에 휩싸이는 것이다.” (p133)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현기영님의 자전적 이야기로 소설속의 말처럼 차분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그때의 파편들을 일궈낸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흑백영상들처럼 투박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하얀 저고리를 입고 물동을 이고 가는 아낙이나 동생을 업은 코흘리개 아이, 한쪽 팔을 크게 흔들며 제기차기에 열중인 아이의 모습들이 깜빡이는 화면 속에서 뒤뚱거리며 다가온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제주도의 4.3사태와 6.25전쟁과 같은 역사의 어두운 조각들도 존재하기에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직 어린 나이기에 4.3사태의 역사적 의미보다는 검붉은 잿더미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가족들, 이웃의 눈물과 곡소리를 통해 그 실체를 어렴풋이 알아간다. 그리고 전쟁의 발발과 함께 몰려든 피난민을 통해 또 한번의 사회적 아픔과도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던가~ 아직은 어리기에 그 슬픈 흔적들도 쉽게 치유되는가 싶다.
역사의 그늘이 있지만 그 속에서 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동심은 소설의 중, 후반으로 가면서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홍당무 소년’으로 바뀐다. 수줍고도 아름다운, 하지만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소년, 그 소년의 원색적인 엉큼함마저 감미롭게 다가온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옥상에 올라 동네 골목길을 바라보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나가는 누나들과 아줌마의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보면서 킥킥거리던 일들이 수줍게 기억난다.


특히 그 시기(사춘기)에 보였던 ‘문학적 성숙단계’가 눈에 띈다.
4.3사태의 암울한 상황과 몇 번의 병치레에서 오는 허허로움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글쓰기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우울하고, 고독한 지성인의 모습을 흉내 내려는 어눌한 모습까지도 아름답게 보인다.
“나도 한번 우울해져볼까?”하는 작위적 욕심마저 들게 한다.


정형화된 사무실의 끈끈한 오후, 나는 제주도의 푸른 파도소리를 듣는다.
해안에 부딪혀 조각난 바다의 파편은 잔잔하고 감미롭게 내 마음을 적신다.
현기영님이 미치도록 부럽다. 그 부러움의 끝을 이 책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분류 :
한국
조회 수 :
5026
등록일 :
2011.04.30
01:27:40 (*.182.220.169)
엮인글 :
http://freeismnet.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833&act=trackback&key=883
게시글 주소 :
http://freeismnet.cafe24.com/xe/83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287 외국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2011-04-01 5597
286 인문 대한민국 50년사 - 임영태 2011-04-10 5582
285 산문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이외수 2011-04-07 5579
284 외국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izgerald) 2012-04-12 5574
283 인문 인생 수업(Life Lessons) - 엘리자베스 퀴브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데이비드 케슬러(David Kessler) 2011-12-05 5544
282 산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2011-05-28 5543
281 산문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 서갑숙 2011-04-17 5540
280 한국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2011-05-01 5533
279 외국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 - 리차드 바크 (Richard Bach) 2011-04-06 5524
278 한국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2011-04-18 5523
277 인문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 김용규 2012-02-06 5495
276 외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man live by) - 톨스토이 (Lev Nikolajewitsch Tolstoi) 2011-04-09 5477
275 한국 무진기행 - 김승옥 [1] 2012-03-11 5471
274 인문 어린왕자와 장미 - 장성욱 2011-04-08 5461
273 한국 캐비닛 - 김언수 2012-10-22 5438
     
Since 1998. freeism.net
by moon s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