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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지은이 : 박완서
출판사 : 현대문학 (2010/08/02)
읽은날 : 2010/10/22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녀의 글에는 전쟁의 무서움과 자연의 풋풋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공존해 있었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봤던 전쟁의 허허로움은 공포와 함께 그녀에게 각인되어 "장구한 세월을 냉동 보관된 식품처럼 썩은 것보다 더 기분 나쁜" 느낌으로 남았다. 전쟁을 책과 영화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나에게는 쉽게 다가서기 힘든, 가볍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녀의 삶 속에 녹아있는 아픔이 조용하게 다가왔다.
 또한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하게 된 모습에서는 시골 소녀 같은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잔디밭을 가꾸기 위해 온갖 잡초와 씨름하는, 그러면서도 그 잡풀을 미워하기 보다는 정원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시골 촌부의 모습처럼 다정해보였다.
 남편과 아들의 사별이 안겨준 슬픔도 아직 치유중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외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은 담담한 문체 속에 녹아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슴 한 곳에 응어리 진 슬픔은 쉽게 가시질 않아 보였다.


 박완서, 참 곱게 늙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 할머니 같은 미소와 수수한 글맛이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는 할머니였다. 점점 벌어지는 시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가 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회상하는가 하면 최신 영화를 보고는 그 모호함과 잔인함에 혼란스러워 한다. 어쩌면 시간을 쌓아가는 이런 모습들을 통해 좀더 친근감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산문집에 등장하는 책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거창한 서평이나 독후감은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과 어우러진 책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책들을 통해 그녀의 감성을 유추해보면 어떨까. 부드럽고, 잔잔한 강물 밑에 감추어진 슬픔이랄까, 뭐 이런 애잔함이 묻어난다.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
 특히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이 인상 깊다.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어렵게 생활했던 화가를 고고한 서울대생이던 그녀는 극장에서 간판이나 그리던 '간판쟁이' 정도로 무시해 버렸단다. 하지만 화집에 실린 그의 그림을 보고는 "내가 그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그녀의 첫 소설, <나목>의 밑거름이 되었다. 철없던 젊은 날의 인연이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는 사실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분류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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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9
등록일 :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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