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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롤리타(Lolite)

지은이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옮긴이 : 권택영
출판사 : 민음사 (1997/12/18, 초판:1955)
읽은날 : 2013/10/03


롤리타(Lolite)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행동’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나는 인터넷을 통해 <롤리타>라는 소설이 있고 거기서 이 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삼류로 취급하는 사회분위기와는 달리 <롤리타>는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었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거기다 성과 관련된 책이라 호기심이 동했고 아동과 성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구한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롤리타>로, 판권이 종료되어 더 이상 구하기 힘들어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 어떤이는 오래된 번역의 절판본을 웃돈까지 줘가며 사야할 이유가 있느냐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책장에 꽂힌 비슷한 디자인의 문학전집을 보다보면 왠지 한 출판사의 전집류만 계속 고집하게 된다. 어쩌면 시각적인 구색을 맞추어 놓으려는 일종의 내 과시욕일지도 모르겠다. 아뭏튼 약간의 허영심과 맞물린 호기심과 기대로 <롤리타>를 펼친다.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험버트는 에너벨을 사랑했지만 그 소녀는 곧 발진티푸스로 죽고만다. 하지만 에너벨과의 못다한 사랑은 어린 소녀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되어 그를 따라다녔다. 성인이 된 험버트는 어린 창녀를 만나보기도하고 결혼이란 제도에 자신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가슴 한 곳은 어린 소녀에 대한 갈망으로 늘 허전했다. 그러던 중 열 두 살의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p15)를 만난다.
  “변덕스럽고, 성질 사납고, 명랑하고, 버릇없고, 안하무인인 십대 소녀의 요부 같은 우아함으로 가득 찬 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치도록 갖고 싶은 아이, 검은 나비 리본과 머리를 묶은 작은 핀부터 매끄러운 장딴지 아래 작은 흉터까지.” (p69)


  험버트는 롤리타와 더욱 가깝게 지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헤이즈(롤리타의 엄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 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도 함께 있었다. 헤이즈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고 험버트는 롤리타의 공식적인 아버지가 된다. 그는 롤리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마침내 그녀를 소유하게 된다. 그는 롤리타의 아버지이자 연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롤리타가 자기 또래의 이성이나 다른 곳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그럴수록 그의 감시와 구속, 집착은 더욱 광적으로 변해간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는 <롤리타>를 더욱 깊이있게 만든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듯 읊조리는 험버트의 말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집착, 분노가 롤러코스터처럼 격동했다. 롤리타에 대한 사랑에 핑크빛 세상을 보다가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그녀와의 관계에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도덕적 갈등과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은 소심한 일반인의 모습과 치밀한 범죄자의 모습까지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가족의 사랑에 목마라했던 롤리타는 아버지의 애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심은 결국 그녀를 구속하게 되는 단초가 되어버린 것. 후에 이런 상황을 책망하며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가족에 대한 동경과 익숙해져버린 물질적 풍요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험버트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의 이 소설에서 그는 롤리타를 진정으로 사랑했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롤리타에 대한 육체적 집착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는 의처증 환자처럼 집요했다. 화롯불 옆, 인화성 물질을 채워가며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위태위태한 집착은 끝이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노라 말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일 뿐 사랑의 순수함을 빌어 행하는 범죄와 다름없어 보였다. 험버트는 이렇게 롤리타의 구덩이 속으로,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묻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롤리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 뒤에 숨은 애정만 놓고 본다면 그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린 소녀였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사랑에는 필시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는 순수함도 어느 정도는 숨어있는 것 같다.
  특정한 대상을 몇 년씩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는 몇 십 년 째 결혼생활을 하며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제도나 자식이라는 혈연적 관계가 없다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배우자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거나 빼앗긴 적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험버트는 자신의 사랑을, 열정을 결코 놓지 않은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린 소녀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자기 딸을 성적 노리개로 이용한 것 이상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애초의 순수함을 잊어버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었기에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상대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더 강하다. 그래서 종국에는 나와 대상은 사라지고 욕망 자체만 자신을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얼굴만 봐도 좋다가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그러다가 입맞춤까지 상상하게 되지 않던가. 그렇기에 <롤리타>는 성도착증 환자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숨겨진 욕망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부르는 것. 가끔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싶다. 사랑할수록 놓아주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한발 떨어진 여유가 우리의 관심을, 사랑을 더 질기고 오래토록 유지해주는 비결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민음사 판 <롤리타>의 번역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 없다. 글은 희극과 서사시를 넘나들며 독백과 회상을 통해 독자, 혹은 청중이나 관객에게 롤리타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험버트의 감정 기복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글은 책을 읽는 나를 더욱 고달프게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시켜주는 번역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곤혹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번역서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의 경우, 난해한 문맥을 접하다보면 번역가의 역량에 따른 문제가 아닌지부터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원문의 가치마져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민음사판 <롤리타>와 함께 최근에 판권을 구입해 새롭게 출판한 문학동네판 <롤리타>에 대한 평을 찾아봤다. 두 출판사의 번역을 놓고 갑을박논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민음사(권태영)는 원문에 충실하려 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문학동네(김진준)는 내용은 쉽게 들어오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dehet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민음사는 미친놈이 혼자 열정적으로 중얼거리는 걸 옆에서 주워듣는 느낌이고, 문학동네는 미친놈이 날 다정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광기를 존나 무섭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dehet)


  ‘세계문학’이라는 표제를 달고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고전, 하지만 번역을 할 때 좀 더 공을 들여 신중하고 작업했으면 좋겠다. 읽기 편하면서도 원문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말이다. ‘미친놈의 열정적 중얼거림’같던 민음사판과 ‘친절한 미치광이’ 같은 문학동네판을 비교해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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