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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Atemschaukel) 


지은이 : 헤르타 뮐러(Herra Müller)
옮긴이 : 박경희
출판사 : 문학동네(2010/04/05)
읽은날 : 2011/10/25


숨그네 (Atemschaukel)  

  담담하다. 그래서 더 서글픈 것일까. 현대사의 질곡에 묻혀버린 인생들이 깨어났을 때 세상 속으로 두 팔 벌려 달려나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자유에 대한 열망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도 이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에 대하여>라는 책이 기억난다. 시집을 연상시키는 얇은 매수에 수상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얼핏 봐서는 개의 죽음에 대해 읊어놓은 산문집 같았다. 하지만 내용을 읽다보면 그 속에 담겨진 상황이나 비유가 우리 인간사의 모든 내용을 함축해 놓은 명상서적 같았다. 모호한 듯 하면서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와 닿는 의미가 매력적이었다.
  이번에 읽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역시 이런 부류에 가깝지 싶다.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엉겁결에 러시아 수용소에 갇히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수용소 생활에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전쟁이나 사상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수형생활의 소소한 소재를 통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써내려간 작은 일상 속에는 삶과 죽음, 가족과 이웃, 행복과 불행과 같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는 듯 했다. 이야기가 전쟁과 수용소 생활의 참담함을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사는 오늘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걱정,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밀러의 글 속에 녹아있었다.
  그러나 어둡다거나 무겁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랄까. 마치 아름다운 한편의 시집을 보는 듯, 부드럽고 감미로운 언어 속으로 유영하는 것 같다. 몸은 수용소 안에 있지만 마음만은 푸른 잔디밭을 산보하는 것처럼 신선했다.
  그래서일까, 헤르타 뮐러라는 작가 이름 밑에 적힌 옮긴이, 박경희 님의 이름도 계속 눈여겨보게 된다. 번역서가 아닌 한국 여류작가의 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부드럽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문장도 간혹 보이지만 나의 문학적 한계 때문인지 뮐러의 글 자체의 난해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번역도 엄연한 '작품'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숨그네>는 이야기 전개에 상관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바로 읽어 나가도 되지 싶다. 잠자기 전이나 약속을 기다리는 거리에서, 혹은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깐씩 읽어도 충분한 여운을 남기지 싶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지만 따로 한권을 준비해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어야겠다.

 

분류 :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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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6
등록일 :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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