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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강산무진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문학동네 (2006/04/17)
읽은날 : 2009/12/09


강산무진  배웅


 정체된 도심에 갇혀버린 한 중년의 일상. 택시 운전을 하는 김장수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그가 옛날 식품사업을 할 때 함께 고생했던 경리직원인 윤애였다. 물론 단순한 직장동료였다면 '소설꺼리'로 까지는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은 사랑이라고도, 불륜이나 치정이라고도, 심지어 욕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뭐랄까, 물이 흐르듯이, 날이 저물면 어두워지듯, 해가 뜨면 밝아지듯이 그렇게 되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찾아온 작은 여운이었지만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다시 현실 앞에, 꽉 막힌 현실 앞에 선다.


 화장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돌보며 회사 내 젊은 여인을 훔쳐본다. 검버섯이 돋아난 아내의 앙상한 살가죽과는 달리 하얀 목덜미와 핑크빛 속살의 그녀는 더욱 도드라졌다. 그녀의 모습, 숨결, 몸짓, 이 모든 것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추은주, 그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죽었고 전립선염으로 인한 오줌보는 더없이 팽팽해져 왔다. 회사는 '내면여행'과 '가벼움'이라는 두 콘셉을 오가며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화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된다. 삶과 죽음, 외면과 내면, 무거움과 가벼움이 뇌종양으로 죽은 아내의 장례를 통해 주인공의 삶 위로 부상한다.


 항로표지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는 섬 주변을 자나는 배들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정작 소라도로 들어오는 배를 인도한 적은 거의 없다. 그저 다른 이의 앞길을 가리켜주는 묵묵한 조력자일 뿐이다.
 소라도 등대를 관리하는 동대장 김철은 아내의 출산과 함께 보다 생활여건이 좋은 내륙으로 떠나려한다. 한편 도산한 대기업 경영진 출신의 송곤수는 등대 관리라는 새로운 일거리를 맡아 소라도를 찾는다. 이들은 등대라는 이정표를 중심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선다.


 고향의 그림자


 대영호를 타고 바다로 도피한 택시강도 조동수를 체포하기 위해 P항으로 내려왔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신 곳이기도 했다. 동향이라는 이유로 내려왔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다. 대소변은 물론이고 자식 얼굴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는 과거에 낙태한 사산아에게 매달려있었고, 떠올리기도 싫은 판자촌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조동수가 P항으로 돌아오는 날 그를 체포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긁어버린" 그녀석이 생각나서일까...
 누구에게는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이 되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기억과 현실의 오버랩 사이이의 방황한다.


 언니의 폐경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언니에게 갑작스레 폐경이 찾아온다. 더욱 말이 없어지는 언니는 남편 장례비와 보상금의 대부분을 자식과 시댁에게 빼앗기다시피 넘겨줘버렸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돈마저 이혼 수속 중이던 나에게 쏟아 부었다. 폐경기에 접어든 언니는 지는 노을처럼 점점 안으로 움츠려들었다. 나는 딸아이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이혼절차를 따라가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전남편의 입사동기였던 '그이'가 옆에 있었다.
 가족사의 불행과 함께 닥친 폐정은 극복하기 힘든 고갯길처럼 힘겹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라운드를 맞이하는, 인생의 후반전을 알리는 신호소리가 아닐까. 폐경으로 황량해진 자궁이 손자의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머나먼 俗世(속세)


 'NIRVANA'라는 문구가 대각선으로 들어간 사각의 링에 나는 서있다. 라이트 웰터급 챔피언 김득수와 타이틀매치를 벌이고 있다. 잽, 잽, 어퍼, 어퍼, 미끄럽게 번득이는 땀 냄새 속에서 풍도 해망사의 일이 눈앞에 펼쳐진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을 키워 온 난각스님을 찾아온 장일식은 사회혁명을 꿈꾸는 지명수배자였다. 난각스님은 병약한 그에게 잠자리와 약을 내어줬지만 난 그를 경찰에 신고해 버렸다. 과거의 기억은 폐허로 번했을 해망사와 함께 NIRVANA 위에 묻혀 버렸다.
 권투라는 비정한 현실과 절이라는 이상적 공간의 대비가 극명한, 그래서 지극히 김훈스러운, 그래서 조금은 평이한 글이지 싶다. 하지만 단순한 문체와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전형적인 구성은 내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킨다. 한 문장씩 찬찬히 필사하면서 글쓰기를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지 싶다.


 강산무진


 간암 진단을 받은 김창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무로 재직 중이던 의류업체에 명예퇴직 신청을 한다거나 장롱 속에 넣어둔 철지난 옷, 은행에 맡겨두었던 통장이나 주식을 정리하는 것 외엔 특별히 없었다. "의사가 말했듯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산책"이 주요 일거리로 등장한 그는 산책 중에 우연히 들른 박물관에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게 된다.
 "팔 미터가 넘는 긴 가로 화폭을 따라서 강산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으로 본 강산과 꿈에 본 강산, 꿈에도 보지 못한 강산들이 포개지고 잇닿으면서 출렁거렸다. (중략) 윤곽선을 풀어헤친 산맥은 연기처럼 엉키고 또 흩어지면서 허공 속으로 흘러갔고, 기진해서 소멸해가는 산맥들이 하늘 속으로 빨려드는 잔영 너머에서 바다는 시작되고 있었다."
 인생의 막바지를 준비해야하는 중년의 허허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십 수 년을 세상과 씨름했건만 손에 남은 것은 <강산무진도>의 허공과 잔영뿐이다.


 7편의 단편을 모은 김훈의 소설집으로 사건을 중심에 놓고 그 언저리를 적절하게 꾸려나가는 모습이나 반어법과 역설이 적절히 조화된 ‘김훈’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


 으... "우두둑"(머리털 뽑는 소리!)


 뭔가를 적기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지만 소설의 끝자락을 잡아끄는 몽롱함 존재할 뿐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는다.
 단편집을 읽고 나면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진득한 글쓰기에 대한 나의 한계인데, 장편에 비해 명확한 사건 구성이나 심도 깊은 인물 묘사가 생략되어 있는데다 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독후감이랍시고 적는 글들이 대부분 줄거리 중심으로 흘러가곤 한다. 이번 글도 마찬가지로 줄거리 요약 정도에서 마무리될 것 같다. 뭔가를 더 적고 싶으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환영을 글로 표현할 재주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나의 표현력이 좀 더 키워진 다음을 기약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분류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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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0
등록일 :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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