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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밤의 피크닉(夜のピクニック)


지은이 : 온다 리쿠(恩田陸)
옮긴이 : 권남희
출판사 : 북폴리오(2005/09/05)
읽은날 : 2012/01/06


밤의 피크닉 (夜のピクニック)  

  "지나버리면 모두 들떠서 즐겁게 걸었던 것, 수다 떨었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그것은 전체의 극히 일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퉁퉁 부은 얼굴, 발의 통증을 잊으려 애쓰며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했던 것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p80)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다보면 꼭 이런 느낌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달리기가 끝나고나면 어김없이 다음 대회를 기다리게 된다.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잊혀진 체 결과에서 오는 쾌감만이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밤의 피크닉>에서는 아침 여덟 시부터 다음날 여덟 시까지, 80km를 걷는 단련보행제가 행해진다. 북고 3학년 같은 반에 다니는 나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도 이 행사에 참가한다. 둘은 아버지가 같은 이복남매였지만 이를 숨긴 체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며 생활해왔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의 도움과 배려와 더불어 육체적 극한상황을 체험하는 보행제를 통해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게 된다.

  여기서 보행제는 도오루, 다카코의 심리상태를 보듬어주는 배경이 된다. 막연한 기대와 함께 시작된 행군은 완만한 경사를 지나 서서히 각도를 높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급경사를 이루며 이들을 몰아붙인다.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은 혼미해지는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의 환경까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 대오각성과 같은 종교적인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한번쯤 고민해봤음직한 막막한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가 복잡한 것도,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신적, 육체적 고행을 통해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마치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랄까. 저 코너를 돌면 반환점이 보일거야, 저기 언덕을 넘어서면 결승점이 보이겠지 하며 달려가지만 언제나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코너와 더 높은 언덕이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멈출 수도 없는 일. 고통스러운 현실을 불평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현재의 발걸음에 충실하며 힘차게 팔을 휘저을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런 노력들이 시간과 함께 쌓였을 때, 결승점을 통과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네가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다, 홀로서기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알아.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 (p156) 
 
  우리는 결과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건을 판단해 버리고 성급하게 재단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지금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이끌어줄 다양한 목소리를 '잡음'이라고 무시한 체 아무렇게나 흘려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끝으로 고등학생이 밤낮이라는 만 하루 동안에 80km를 걷는다는 보행제가 신선했다.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행군을 고등학교에서, 그것도 매년 전교생이 참가해서 걷고(60km) 달리고(20km) 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실제 일본에서 행해지 것인지 소설 속의 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점점 허약해지고 있다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생각하니 혁명적이기까지 했다.
  과연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 대신 이런 '한 밤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면 어떨까. 건성으로 훑고 지나가는 전시관 유람 보다야 백배 나아보이지만 안전이라든가 사회여건 상 어려움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즉각 결과를 얻고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세상에서 행군이나 마라톤 같이 오랜 끈기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체험도 유용하리라 싶다. 
 

분류 :
외국
조회 수 :
6626
등록일 :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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