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지은이 : 성석제
출판사 : 문학동네 (2000/12/06)
읽은날 : 200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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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순정>이란 이름으로 가장한 성석제님의 ‘구라’속으로... 이 새롭고도 신나는, 엉뚱한 여행의 주인공으로는 좀도둑질에 만족하지 못한 체 한 여심(女心)을 도둑질하려는 이치도가 등장한다. 그는 한때 수많은 남정네를 설레게 했던 춘매의 아들로 우연히 왕학을 대부로 맞아 도둑질의 근본이념을 익히지만, 그의 딸 두련에게 그만 ‘뿅!’ 가 버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한마디로 한 도둑놈(이치도)를 중심으로 한 각 남녀들의 사랑법, 지고지순(?)한 순정을 성석제님의 기똥찬 말 빨로 얘기하고 있다.
마치 혓바닥으로 요리조리 굴려먹는 사탕의 달콤한 느낌이랄까. 입안에 달달한 침이 고이면서 이빨에 부딪치는 사탕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강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입안이 텁텁해지고, 혀가 둔감해지는 느낌이다. 석제님의 단편에서 느낀 강열하고 화려한 글맛은 장편이라는 긴 시간 속에선 그 빛이 발산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새로우면서 발칙하기까지 한 글 형이지만 그 사용빈도가 높아지면서 정형화되는 느낌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음 대사기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코미디프로처럼...
또한 너무 잔재미에 치우쳐서인지 극 전개부분은 다소 미약하게 느껴진다. 성석제님의 화려한 글 빨에 가려 정작 이치도라는 인물의 설정이나 내면의 변화 과정이 잘 드러내지 못한 것 같고 모범소녀 왕두련이 갑자기 날라리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혹사하면서까지 타인을 보살피는 천사(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가 되어있는 부분 역시 이상하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이치도의 스승(스승이란 부분도 쪼매 애매하다)인 왕학은 난데없이 일본에서 우리문화재를 도둑질해 와서는 뜬금없이 박물관에 기증한다. 마지막 부분 역시 ‘문득 눈을 뜨니 모든 게 간밤의 꿈이었다.’ 식으로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이치도와 그 주변사람의 거짓말 같은 삶이나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태자관의 허상을 마지막까지 끌고 감으로써 ‘순정’이라는 부분을 더 강조하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의 무게중심이 말미에 엉뚱한 곳으로 옮겨가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마약중독의 금단현상과 같이 한번 길들여진 ‘성석제표’ 맛은 쉬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언제고 다시 한번 성석제님의 소설을 집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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