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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지은이 : 한비야
출판사 : 푸른숲 (1999/11/11)
읽은날 : 2010/12/20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1. 한비야


 한비야, 그녀가 우리 땅에 섰다. 전라도 해남에서 강원도 민통선까지의 도보여행을 통해 6년간의 세계여행을 마무리 지으려했다. 1999년 3월에 시작된 여행(49일간)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보자면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간극은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묵은지에서 느끼는 쌉싸래한 시간의 맛이 더해져 나를 몰아세웠다.


 처음엔 그냥 심심풀이용으로 집어든 책이었지만 그녀의 진솔함과 도보여행의 끈끈함에 이끌려 내쳐 읽고 있다. 그전에 읽던 책이 있었지만 잠시 미뤄두고서 그녀의 이야기 속에 다시 빠졌다. 사실 그녀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읽은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그녀의 매력에 푹, 함몰되어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읽었고 몇 권을 더 주문해 지인들에게 선물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과거 책들, 이를테면 6년간의 세계여행기를 다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나 오늘 읽은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인터넷으로 사놓고 미뤄뒀던 소설들도 많았지만,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은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그런 오해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는 있었지만 베스트셀러 자체가 갖고 있는 획일적인 느낌이 싫었다. 더군나 그녀의 여행기가 나의 방랑끼를 다시 부추기지나 않을까하는, 약간의 질투심도 한 몫 했었다.
 그녀가 주목받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까지 나는 제법 많은 도보여행을 기획했고 그중에 몇몇은 실제로 떠났다. 해남에서 서울까지 도보와 자전거로 올라가려고 길을 떠나기도 했고 변산반도의 강과 산, 바다를 일주하기도 했다. 지리산의 능선에서 몇날 며칠을 지내기도 했고 울릉도를 구석구석 걸어 다니기도 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녀와의 정면대결을 애써 외면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책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고 급기야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잠시 읽고자했던 책에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방랑끼가 다시 동하기 시작했고 어느 틈에 나만의 보도여행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일단 그녀의 길을 따라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여행해야지. 책에 소개된 일지와 지도를 참고삼아 4개 구간으로 나눠 여름과 겨울, 이렇게 2년에 걸쳐 걸어가면 되겠군. 아들 녀석이 조금 크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보는 것도 좋을 거야. 참, 아들 녀석이랑은 울릉도 일주를 먼저 해보는 게 좋겠군. 그래서 걷는다는 것, 야영에 대한 재미를 보여줘야겠어."
 나는 이미 뜨거운 태양 속을 해치며 전국을 누비며 있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을 쐬며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았다. 밍밍해진 물을 마시며 가야할 길을 확인한다. 땟물이 눌어붙은 목덜미에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알고 있다. 나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번져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녀의 환한 미소는 다시금 나의 배낭을 꾸리게 한다. 일상에 미뤄뒀던 일들을 작게나마 시작해봐야겠다. 아자!


 # 2. 여행


 그녀의 여행길은 대부분 혼자서 떠났지만 어디서고 혼자 있지는 않았다. 그녀를 알아보는 독자와 팬들도 있었지만 시골 촌구석의 할머니와 동네 아줌마까지도 그녀는 친구로 만들었다. 논밭을 매는 마을 할머니나 우연히 들른 매점의 아줌마까지도 그녀의 넉살에 이네 친구가 되었다. 친구뿐이겠는가, 기꺼이 하루 잠자리와 식사까지 대접(?)받는다.
 그녀의 얼굴은 보기와는 달리 몇 배는 두꺼워 보인다. 그녀를 모르는 초면의 사람도 몇 마디 대화만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은 풍경만 둘러보고 자신만 추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람과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그녀를 따라 다니다보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활하는 착각마저 들만큼 여행에서 오는 '외지인의 벽'이 없다. 겉만 훑고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에 녹아들며 하나가 되어 동화된다.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에서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비야님의 모습이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존중과 겸손, 그리고 용기가 인상 깊다.


 # 3. 환경


 즐겁고 유쾌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와 악의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낯선 이는 그나마 봐줄만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파헤쳐진 산하와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훼손해버린 자연은 결국 우리들의 숨통을 죄여올 것이다. 근시안적인 환경의식으로 자연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라고 외치는 좀머씨(파트라크 쥐스킨트의 <좀머씨의 하루> 중에서)의 절규 같았다.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자정해나갈 것을 왜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자연에 대한 성급한 개발과 이로 인한 재난,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또 다른 개발... 이런 과정을 반복적인 거치면서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 부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에는 자연형 복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처음의 자연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만 없다면 자연은 스스로를 지키며 정화시켜 나갈 것이다. 제발, 그대로 놔두자. 무슨무슨 사업이니 개발이니 하는 반자연적인 일들은 집어치우고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따라가자!



 # 4. 종교

 그녀는 천주교인이다. 비구니(여승)였던 할머니와는 달리 그녀의 식구들은 모두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수용적이다. 사랑이건 자비건 결국에는 '인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둔 종교였기에, 이웃을 중심에 둔 사랑이고 자비였기에 종교의 차이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이롱 천주교 신자'라는 말은 아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걸을 때나 쉴 때나 그녀는 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다. 그분의 사랑을 잊지 않았으며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교회든 절이는,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모두 자기편, 아니 자신의 종교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비야님의 모습은 종교를 어떻게 믿고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교본 같았다.


 # 5. epilogue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가슴으로 직접 느낀 국토는 더 이상 지도 위의 한 조각 땅덩어리가 아니다. 그 땅 위에 있는, 거기에 뿌리내리고 사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역시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녀야말로 우리의 땅과 인간의 발을 사랑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녀의 작은 걸음걸이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축복하며 세계로 향하고 있다. 그녀의 힘찬 발걸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비야 누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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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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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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